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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Jun 14. 2019

리틀 포레스트

오늘은 '불금'... 밖이면 몰라도 집에서 혼자라면 영화를 보는 것이 제격이겠다 싶어 인터넷에서 영화를 골랐다. 마침 어제 사다 놓은 과자봉지와 아이스크림이 있어 영화 감상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모니터 앞에 세팅하고 선택한 영화를 클릭했다. 제목은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주연으로 원작은 일본 영화인데 재밌게 본 기억이 나서 우리 영화로는 또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의식주는 우리 삶에 가장 기본이다. 도시인들에겐 무엇보다 입는 것이 중요하달까. 남의 눈에 잘 띄니까. 집만 나가면 아는 이에게든 타인에게든 자신의 입성은 여지없이 노출된다. 그것은 품위로까지 여겨지겠지만 오백씨씨 맥주잔 위에 거품일 수도 있다. 따르면 생기게 되는... 그런 도시에서 오래 살았어도 추운 겨울 오랜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은 밥부터 해먹는다. 쌀독에 한줌 쌀말고는 부엌이 텅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마당으로 나간다. 시골은 마트 대신 텃밭이라고, 겨울임에도 띄엄띄엄 남아있는 배추와 파가 눈에 덮인 채 뽑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뚝딱 도깨비방망이 맨치로 끓여낸 배춧국은 난로 속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함께 집안도 뱃속도 따뜻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불꽃 튀는 장작불의 온기와 땅속에 박혀 있었던 푸성귀라는 날것은 문명과는 떨어져 있어 보여도 자연스러웠다. 물을 데워서 난방하는 보일러는 기술적이어서 매력 없다. 후드득 거리는 소리와 장작 타는 냄새는 열을 내기 위한 원초적 몸부림으로 솔직해 보였다. 영화 보는 지금 나는 무얼 먹고 있나. 원재료가 뭔지도 모른 채 튀기거나 구운 것 같기도 하면서 '단짠'으로 버무린 '쓰레기'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늘 먹던 것에 긴 한숨이 나왔다. 우선 먹는 것이 중요하다. 채운만큼 때깔이 나는 법이니까.

먹는 것엔 정성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 곁들여야 됨을 알았다. 하다못해 간단히 먹는 수제비조차도 반죽은 두 시간의 숙성이 필요하단다. 혜원은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니고 연애도 아르바이트도 하며 교사를 꿈꿨다. 어려서 시골로 이사 온 그녀는 푸르름이 지천인 그곳에서 햇볕과 흙냄새가 배고 바람에 씻기며 자랐다. 그것은 도시적 삶에 대한 면역체계였다. 두 시간이 아닌 이십 년의 숙성은 세상 밖으로 나아갈 아이를 위해 엄마가 마련한 '리틀 포레스트'였다. 그리고 혼자였던 엄마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어린 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엄마는 부엌에 뚫린 창문 너머로 그런 삶을 응시했을까.

옛날 시험 준비 중에 여친에게 도시락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이 손으로 싼, 아니 돈으로 산 회초밥이었다. 맛있게 먹었다. 타인의 배려로 자신의 한 끼가 해결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 먹어갈 즈음 가방에서 다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데 이번엔 자신이 직접 손으로 싼 디저트였다. 여러 가지 과일로 형형색색이었다. 디저트가 오히려 메인이 된듯한 느낌? 순간 그늘을 내준 나무는 '사랑이 꽃 피는 나무'가 되었고, 그날 식사는 감동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영화  혜원은 다시 돌아서야 했다, 손에 도시락을  . 요새 누가 손수 도시락을 싸오냐, 차라리  시간에 공부를 하지, 그러는 여친이  부담돼. 때마침 남친이 친구들이랑 대화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던 것이다. 남자들의 무던함이 굴러 들어온 도시락통을 발로 차버린 셈이다. 통안의 그득한 정성을, 그리고 사랑을. 그들은 그때 연예인들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도시락 3파전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혜리처럼 예쁘지도 않고 혜자 아줌마처럼 솜씨 있는 것도 아니고 슈가보이처럼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 그런 여친에 대한 불만이었을 수도...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에 투박하지만 진정 어린 손맛이 점점 밀리고 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혜원은 엄마의 바람대로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이래저래 도시의 모든 것이 낯설다. 결국 그녀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농가주택을 검색할 정도로 전원에 살고픈 충동을 느꼈다. 도시나 시골이나 어디서   얻는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살아갈수록, 편리하지만 빽빽한 틈바구니보단 수고롭지만 여유스러움이 자꾸 그리워진다. 편리는 얕은 맛이고 수고는 깊은 맛이다. 편리는 갈수록 무뎌지지만 수고는 여운이 남는다. 보람을 느껴서일까.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은 벌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닐 게다. 우리 삶에도 그러하다. 흙을 밟고 개울을 건너고 마당에서 감을 따거나 뒷산에서 밤을 줍는다. 이런 수고들을 통해 어느새 우리 마음 밭은 옥토가 된다. 정서적 치유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자동차나 마트를 통해 얻는 편리함과 맞바꾼 거다. 마트에서 곶감은 처마밑에서 말린 곶감을 이길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명절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마치 자신의 고향도 자연의 포근함이 어려있는 이상향일  같은 상상이 든다. 도시의 찌든 때를 씻어내고 재충전할  있는 어머니  같은 곳을 꿈꾼다는 것은 자신은 아니더라도 아버지나 할아버지 아니면  선대 조상의 고향이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엄마 아빠 손잡고 명절 때마다 찾아간 시골집은 아직도  마음의 고향이다. 조상들을 통한 간접 체험은 DNA 스며들어 도시에 살면서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소낙비에 흠뻑 젖을 처럼 불쑥 깨닫게한다.

나는 특히 불도그 종류의 개를 기르고 싶어 했다. 주둥이가 나오지 않아 자꾸 보면 평평한 사람 얼굴 같아서다. 그래서 더 정이 간다. 같은 이유로 새도 올빼미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진돗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진돗개 사랑도 DNA를 통해 전해졌나 보다. 역시 우리 것이 최고다. 우리의 토종 진돗개, 주둥이 나오고 다리 늘씬하게 뻗었고 귀 쫑긋 서고 꼬랑지 말리고 발바닥 두툼하고... 아파트에는 안 어울릴지 몰라도 흙마당 한구석에 또는 대청마루 밑에 웅크리고 있을 백구나 황구는 우리 삶의 동반자였다. 그것들은 결코 주인들 손에 놀아만 나는 애완견이 아니다. 뛰어난 청각과 후각으로 짖어대고 뛰노는 개의 습성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혼자 사는 혜원에게 다섯 번째 태어났다 하여 이름 지어진 '오구'는 너른 마당의 파수꾼으로서 듬직했다.

누구나 그렇듯 이십 대의 나이는 질풍노도가 한번 휩싸고 지나갔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풀리는 듯, 그러나 더 미궁에 빠지는 것 같은 좌절은 앞으로 살아갈 기나긴 인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탓일지도 모른다. 혜원은 자신을 키워냈던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그 품에 안겨본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을 직접 해먹으며 당신은 왜 딸을 두고 집을 떠났는지 헤아려보고 남친과는 왜 소원해졌는지 농촌의 바쁜 일상 중에 고민해본다. 그냥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 때가 되면 비가 오고 햇빛 쨍쨍하듯 그래서 계절이 바뀌고 언젠가 결실을 맺듯 그런 자연스러움이 자연이라는 것을, 더불어 인생도 그러해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혜원은 자기가 이곳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 말하고 남친과 이별한다. 그리고 엄마 편지에 답장한다, 엄마를 이해할 것 같다고. 겨울을 시작으로 사계절을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 혜원에게 준 결실은 샛노란 가을 들녘만큼이나 풍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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