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다닌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미사 순서 하나하나가 아직 낯설다. 낯설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익숙함으로 숙성되기 이전의 날것이다. 그래서 강한 인상을 풍기며 날 재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호를 긋는다거나 십자가가 있는 제대를 향해 머리 숙이거나 무릎 꿇는 행위들 또는 미사 중간중간 읊어대는 기도문들이나 그레고리풍의 문답들은 자신의 신앙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사 드리는 한 시간 동안 가슴속 신앙심을 떼어내 자신만의 성스러운 조형물을 빚어내는 것 같다. 이런 바쁜 흐름 속에 잠시 공백의 시간을 발견했다. 신부님은 강론이 끝나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눈을 감은 듯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신도들 또한 그 시간을 침묵으로 채운다. 1분 정도일까.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멈춤이 더 진한 여운을 남기며 체감하는 시간을 길게 했다. 그리고 깊게 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침묵...... 은 그 어떤 외침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한때 2프로가 모자란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너무 달려온 걸까. 지금은 20프로가 넘쳐나는 것 같다. 각종 방송매체나 SNS에서는 알려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라디오 DJ의 말도 빨라졌고 예능 프로의 진행자도 많아졌다. 익명의 제보글과 그 뒤를 잇는 댓글 폭탄은 인격살인까지 할 정도로 넘쳐난다. 틈만 나면 자꾸 쪼아댄다. 비집고 들어온다. 쉴 틈이 없다. 듣고자 하는 이는 없고 말하고자 하는 이만 있다. 그럴수록 상대에겐 반발심만 생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만 불어댄 구름이 아니라 스스로 덥다고 느끼게 한 해님이다.
"안녕하세요...... 이 허리 보호대는...... 발열이 되어 따뜻하고요......"
어느 잡상인이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데 천천히 그리고 중간중간 끊어가면서 말하였다. 여느 상인 같으면 1.2배의 속도와 크기로 떠벌리고 승객들은 외면했을 텐데, 저음의 목소리이기까지 한 그 상인은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도 뭔가 하는 궁금증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상품을 설명할 때 중간중간의 여백이 주변에 더 많은 호소를 한 셈이 됐다. 곧바로 사람들의 관심은 구매로 이어졌다. 십여 년 전 TV 프로인 '수요예술무대'를 즐겨봤던 기억이 난다.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가수 이현우가 진행을 맡았는데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이크를 떠밀듯 멘트를 양보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신선했다. 한쪽이 말을 하면 상대방은 고개를 끄떡이기에 바빴고 그러다 서로 말이 없는 공백도 생겼다. 서로 돋보이려고 드러내는 그 당시 세태와 달라서 처음에는 어색한 듯 싶었는데 차분한 분위기가 오히려 허를 찌르는 중독성이 되어 계속 시청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프로는 12년 동안이나 장수하였다.
미사 도중 그 침묵의 시간은 무슨 의미일까. 잠깐 멈춤이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어느 정도 가면 멈춘다고 한다. 급히 달려오느라 영혼이 미쳐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기다려 주기 위해서다. 영혼을 기다리는 것, 자아를 추스르는 그 짧은 시간이 미사 중인 나를 재발견하여 습관적일 수도 있는 예배에 진정성을 담게 된다. 때가 되면 하게 되는 일상적인 것들이 당연시되어 그 소중함이 잊히는 수가 많다. 매일 숨 쉬는 공기, 일용할 양식, 함께하는 가족들, 그리고 두 다리로 걷고, 보고, 듣는다는 것 들은 당연한 것 같아도 영혼을 챙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축복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푸른 하늘도 보이고 산들바람도 느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거기서 진정한 삶의 출발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