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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Jul 25. 2019

건너편의 그들에게

기울기를 한 단계 또 높였다. 최근 들어 세 번째다. '러너스 하이'가 점점 더 러닝머신 발판을 가파르게 한다. 힘겹더라도 한 시간이나 땀을 쪽 빼고 얻어내는 성취감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 맛에 오늘도 발걸음은 헬스장 아니, 베란다로 향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러닝머신의 양쪽 손잡이가 두 팔 벌리듯 나를 반긴다.


음악을 들으면서 다리는 바삐 움직이고 팔은 앞뒤로 휘저으며 온몸을 한바탕 들었다 놓는 와중에 두 눈은 창밖을 바라본다. 밀집된 단지 배치로 앞 동의 계단실이 보인다. 각 층의 계단참이 있는 곳마다 네모반듯 뻥 뚫린 개구부는 내부의 어둠을 배경으로 TV 화면 같다. 15개의 화면이 위아래 일렬로 세워져 있어 어제는 어떤 아저씨가 13층 화면에 불쑥,  오늘은 젊은 아가씨가 9층 화면에 슬며시 나와 뻐끔거린다. 실내 흡연을 금지당한 끽연가들은 언제부턴가 계단실로 밀려 나와 욕구를 해소한다. 나는 땀을 내지만 그들은 연기를 낸다. 나는 지방을 태우지만 그들은 담배를 태운다. 그러나 머릿속은 짜릿한 쾌감으로 동일하단다. 단지 엔도르핀이냐 니코틴이냐의 차이일 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냘픈 두 손가락만 다르지 입술에 닿을 때마다 담배가 조금씩 연기로 사라지는 모습은 똑같다. 여자한테 담배가, 남자한테 화장만큼 어울리지 않은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둘 다 어느 쪽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성별의 둑이 무너지면서 밀려온 개인의 자유가 서로의 눈초리를 무던하게 한다. 너는 뛰냐, 나는 피운다... 각자의 행위는 짬짬이 시간을 보내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로써 평준화된다. 하지만 웰빙 쪽에 선 나로서는 건너편 그녀의 끽연이 아득하기만 하다. 나이 드는 만큼 건강이 신경 쓰이는 탓에 저쪽 흡연자들이 자연스레 걱정된다.

 

4000 가지의 유해 물질이면서 그중 10프로가 발암물질로 뒤섞였다는 담배연기  모금을 깊은 산속 옹달샘인  삼켜버린 그들의 표정을 보았을 , 운동하느라 힘겨운 호흡을 하는데도 내가  편한 느낌이다. 운동도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자기관리의  종목으로 우뚝  이상 흡연구역은 날로 좁아진다. 한때는 담배 피우는 모습이 커피와도 어울렸고 낙엽 떨어지는 벤치 위에서도 분위기를 자아냈다. 만년필  손을 연기 나는 담배  왼손이 응원했고 덕분에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감상할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화면빨' 위해 정작 배우지 못한 담배를 항상 입에 물고 있어야 했다. 담배가 낭만적 소품으로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이래저래 니코틴에 대한 욕구의 변주였지만...  그러나 지금은 제한된 구역에서 옹기종기 모여 굴뚝을 형성하거나 시간에 쫓기듯 외로이 홀로 담배를 해치우는 것을 보면 낭만을 벗어던진  욕구만 빨아대는 민낯을 보는  같아 안쓰럽다. 정찬에서 끼니로 전락한 듯한...


나도  그랬지만 내 또래는 대체로 담배 피우는 게 멋있어서, 빨리 어른 인체 하고 싶어서, 또는 여자한테 남성성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에 담배를 배웠다. 담배 자체의 맛에 끌려서 피우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맛을 알려면 콜록거리며 먼저 배워야 하니까. 요즘같이 때가 되면 건물 밖이라도 나와서 피워야 하고, 흡연실을 찾아 오로지 담배만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하는 것이라면 '기호'를 넘어 '중독'에 더 가깝지 싶다. 술집이나 카페의 자욱한 담배연기가 일상이었던 그 시절 이후 술, 커피와 결별한 담배는 이제 홀로 서야 하는 애처로움이 있다. 담배를 끊고 이쪽 편에 선 나의 시선이 그렇다. 건강을 해친다고 공공의 적으로 몰려 여러 규제와 제한 속에 갇혀버린 담배... 다시 옛 품격을 갖추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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