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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Aug 07. 2019

칠월칠석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오전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일찍 만났나.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 그들은 역시나 눈물을 뿌렸다. 일 년에 한 번뿐이어서일까. 그들의 사랑은 식을 줄도, 눈물샘은 마를 줄도 모른다. 애틋함이란 그런가 보다. 매일이 아닌 매년 단 한 번뿐인 만남이 아쉬움이 되어 사랑의 유통기한을 무기한으로 만들어 왔다. 술과 설탕은 유통기한이 없다고 한다. 사랑 역시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니 영원하겠지만, 이는 은하수에서나 통하는 얘기일 뿐 지상에서는 갈수록 인스턴트화 되어만 간다.


살아생전 아버지 생신에도 언제나 비가 왔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오거나, 지나가는 비로 살짝 흩뿌리거나 어쨌든 비는 왔다. 아버지의 생신은 음력으로 7월 7일, 그러니까 칠월 칠석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련한 기억이 아니라 오늘도 겪었던 생생한 체험이고, 설화이지만 과학을 뺨치는 정확성을 지니고 있다. 비가 온다는 것, 견우와 직녀가 재회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에 대해.


이 사실을, 지금으로부터 장장 3천여 년 전부터 중국의 주나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망원경은커녕 유리도 없었던 시절, 단지 육안으로 별들이 운행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특정한 두 개의 별에 낭만을 덧입혔다. 남자와 여자로,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리고 비와 눈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육체노동에 대한 물질의 보상만 있었을 뿐 정신적 허기는 채울 수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한 위안이 필요했다. 수확을 앞두고 여름철 내내 열기로 메말랐던 대지를 보았을 때 땅을 적셔줄 비도 절실했을 것이다. 이런 간절함이 이야기를 구성하여 하늘의 운행을 구실로 비를 기원했다.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축복은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천수답 농경민들이 간절히 바랬기 때문일까.


견우성과 직녀성의 만남이 25억 광년이나 떨어진 이 지구에 비를 뿌린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우주만큼이나 무한함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 하던가. 모든 사람의 소우주가 간절함으로 합쳐지면 우주보다 더 광대해짐을 칠월 칠석의 빗방울로 보여주는 셈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Hebrews 11:1)


성경도 사람들이 믿음으로 기원하는 것들에 대해 'sure'와 'certain'이란 표현을 썼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라는 믿음은 인류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얻은 소중한 자산이다. 별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광대한 우주공간이 운행되는 질서가, 지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지구 상의 별이랄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일 테다.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은 생성과 소멸을 위한 과정들이고 이들의 원활한 진행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잘 먹고 잘 살고 그리고 잘 키우는 것... 결국 삶의 의미는 이 세 가지에 있겠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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