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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Aug 18. 2019

워킹

뉴질랜드 와서도 계속되는 나의 일과는 두 가지다, 독서와 운동. 이것은 거의 습관을 넘어 중독의 단계라 해야 할까. 아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삼시세끼 밥 먹듯 틈틈이 읽어야 하고 우리 몸도 핸드폰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운동을 통해 쉼 없이 재충전해야 하는 일상으로 여기고 싶다. 무엇보다 운동으로 근육이 울퉁불퉁해지고 독서로 뇌 근육까지 단련되는 것 같다. 모름지기 ‘울퉁불퉁’은 밋밋함보다 그 안에 뭔가 차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 바람직해 보인다.


워킹은 러닝머신으로 실내에서 하는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근처 바닷가로 나간다. 러닝머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밖의 신선한 공기와 바닷가의 탁 트인 전망, 정적을 깨는 파도 소리 등이 나를 밖으로 불러낸다. 오히려 그런 자연환경을 만끽하려 워킹이 수단이 되어버리는 전도가 일어난다.  점점 심해지는 서울의 미세먼지를 생각하면 여기서의 깨끗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게 된다. 먹방 유튜버가 폭풍 흡입하듯 연이어지는 심호흡으로 기분까지 부풀려지니 날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 기분들에 취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헬로”하며 인사하는 걸까. 그것도 환한 표정으로...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친 행인과 눈까지 마주치게 되면 얼굴이 굳어지게 되는 문화권에서 온 나로서는 거리의 수목이 다르고 차량의 통행이 반대인 것만큼이나 낯설었다. 재밌는 것은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백인인 키위들만 그런 여유가 있다. 중국인, 인도인 등 동양계는 그냥 지나친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은 어떤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왜 우린 그런 여유와 자신감이 없는 걸까, 궁금했다.


마침 나의 또 다른 일과인 독서에서 ‘런던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대항해시대의 후발주자인 영국이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장사거리 포격으로 물리친 뒤 해상권을 거머쥐면서 대영제국의 앵글로 색슨족은 풍요를 누린다. 그들의 후예가 여기 뉴질랜드 키위인지라 선조의 여유로움이 유전자에까지 각인된 것이라면, 반대로 그들을 포함한 서구 열강들의 억압과 착취로 수백 년 동안 시달린 동양인의 피해 의식은 과잉방어에 의한 무뚝뚝함으로 변하여 문화가 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무뚝뚝한 동양인들도 사람인지라 속 깊은 정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길거리 인사는 단지 문화에 의한 특징일 뿐 꼭 그래야 하는 당위는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차이점 내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을 한 편의 기준에 의한 틀린 점으로 보지 않고 나름의 문화로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차이점은 글로벌 시대의 큰 틀 안에서 다양함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그냥 무뚝뚝함으로 마주친다.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이란 게 있다는데 물보다 진한 피가 문화를 법 위에 올려놓는가 보다.


단 하루였지만 여기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한국에선 만만했던 '인터미디어트'란 단계가 영어권인 이 나라에선 수준급인가. 수업 시간에 듣기도 말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나만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세 시간을 보냈으니 서당개 3년과 달리 학원생 3시간은 바보가 되기 십상이었다. 웃는 것도 한 템포 느리니, 스스로 기권할 수밖에. 온리 원, 컴플리트 하게 이해되었던 대목은 뉴질랜드의 장점 세 가지를 이야기할 때였다. safety, natural and education을 선생님이 손꼽을 때 나 또한 고개를 끄떡였다. 잠시나마 부연 설명까지 이해하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갑자기 귀가 트였다기보단 몇 달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공감한 내용이라서일 테다.


그중 자연환경은 워킹으로 매일 체험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속으로 오늘도 걸어야지, 다짐을 하는데 선생님이 다음 이슈는 ‘데인저러스 도그’라 했다. 그러면서 일그러지는 선생님의 얼굴은 불도그를 연상케 할 만큼 솔깃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남녀노소 막론하고 개에 물리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약간 흥분된 어조로 읽으면서 반복되는 ‘도그’에 악센트를 주어 발음하니 나에게는 그 도그라는 단어가 확실하게 리스닝되었다.


요약하자면 여기는 ‘개사랑’이 유별나서 ‘개산책’을 자주 하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개물림’ 당하여 ‘개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위험한 개는 ‘핏불테리어’인데 전 세계적으로 ‘도사견’, ‘코카시안 오브차카’ 와 함께 제일 사납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시커멓고 다부진 체격으로 인상도 험악한 게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생각해보니 워킹하면서 많이 마주친 개다. 순간 아는 게 병이라고 나의 워킹 욕구는 잠시 꺾이는 듯했으나 다시 심기일전,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을 ‘개무시’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맸다. 혹시 쫓아오면 도망이라도 가야 되지 않을까. 그 모습이 ‘개망신‘일지라도 다음날의 워킹을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개, 핏불테리어는 미국 보험회사도 꺼린다고 한다


인류는 300만 년 동안 걸어 다니며 진화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닌 것은 겨우 100여 년에 지나지 않다. 인류 역사를 하루 24시간이라 치면 하루가 끝나기 3초 전에 차를 타기 시작한 셈이다. 과식과 운동 부족으로 생기는 당뇨병의 대표적 후유증은 눈과 발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수렵생활을 하면서 사냥감을 찾는 매의 눈과 그것을 쫓아가는 튼튼한 다리가 과다한 영양으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신체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300만 년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걸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워킹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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