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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Nov 08. 2019

시작은 논술고사였지만...

일단 천 자는 맞추어야 해!!

처음 실시하는 대입 논술고사이기에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학생은 주관적 채점기준보다는 객관적 수치, 즉 1000자의 글자 수가 중요하다는 것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거의 모든 대학이 천 자 이내로 쓸 것을 요구하였는데, 채점할 때 누가 그 많은 글을 꼼꼼히 다 읽어보겠냐는 것이다. 천 자에 못 미치는 글은 여백이 휑하겠고 넘치는 건 뒷장으로 넘어가 읽히지도 않을 것이란 게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추측으로부터 ‘천자’에 대한 수험생의 강박은 시작되었고, 천자를 맞추는 것이 현대판 천자(天子)를 섬기듯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숭앙되었다. 평소 칠판을 보고 베껴 쓰기만 했던 학생들에게 자신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동차 조수석에만 앉다가 갑자기 운전대를 잡은 막막한 상황이며, 주어진 주제에 맞추고 글자 수까지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정해진 목적지를 그것도 시간 안에 도달해야 한다는 격이었다.


겨울 한 달 남짓 계속된 집중 훈련은 일기조차 쓰지 않았던 나에게 혹독했다. 갖가지 주제로 향하는 기승전결의 흐름에 글자 수까지 적절히 배분하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쫓기듯 쓰다 보면 생각보다 글자가 앞서갈 때도 있었다. 한차례 쓰고 나면 머리가 띵하고 손목도 뻐근하여 글이란 자고로 충분한 사고의 결과물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입시가 막바지인지라 올바른 것보다 발 빠른 것이 시급했고 정량의 글을 쓰는 것이 절실할 뿐이었다.


hngahae, 출처 Pixabay


드디어 논술고사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펼쳤다. 주제는 ‘컴퓨터와 점쟁이’였다. 이 무슨 조합인가. 첨단과학과 민간신앙?, 기술과 사술(邪術)?, 기계와 사람?... 잠시 내 사고에 혼돈이 왔지만 전혀 연관성 없을 것 같은 두 개념을 내용이야 어찌 됐든 얽히고설키어 '천자'는 맞추었다. 그리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딱 맞은 사람이 살아난 것처럼, 어쨌든 나도 합격했다.


대학생이 되어 긴장된 삶에서 풀려났으나 내 글은 여전히 긴장 속에 맴돌고 있었고 그것은 연애편지에서 두드러졌다. 날씨 얘기부터 풀어나가는 도입부는 서론이고 함께 했던 시간이 즐거웠다는 것은 본론, 앞으로 잘해보자는 다짐은 결론으로 써대니 어디로 보나 판에 박힌 논술이었다. 달라진 건 마음을 사려는 대상이 채점관에서 여자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며칠 후 답장을 받았다. 날씨 얘긴 걷어찬 채 뜬금없이 '그런데...'로 시작하여 두서없이 써 내려간 내용이었다. 글쓴이에게는 '자유자재'였겠으나 읽는 나에게는 '뒤죽박죽'이었다. 충격적이었다. 글에 기승전결이 없다니 '꿰지 않은 구슬만 서말'인 것으로 보였다. 매번 써대는 논술에 심술부려 답한 것 같았다. 그것은 문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 닫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결국 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것은 똑같은데 글을 통해 진심만 전하면 되는 것을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할까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진심이 나의 글을 자유케 하였다.


뭇 친구들은 말로 진심을 전달하려 하였겠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글이 더 깊이 있음을 편지로 확인하였다. 글로 뚫은 길은 만날 때 말로 다지면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새까만 편지지에다 연필로 써서 건넨 적이 있었다. 연필심은 편지지에 흡수되는 화학성분이 아니기에 전등에 비스듬히 비춰보아야 흑연의 반짝거림으로 힘들게나마 읽을 수 있는 편지였다. 다행히 그녀는 방법을 찾아 어렵사리 읽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편지 쓰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어. 그래도 반짝이는 내 맘을 알아줘서 다행이네~"


이 한마디로 그녀의 불만이 충만으로 급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찬란했지만 그 유치마저 아름다워 보였던 청춘이었다. 결과야 어찌 됐든 편지를 장착한 연애의 과정은 수려했으며 만남의 곱이곱이마다 글로 기름칠을 해댔으니 나는 손편지의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제 생각해보건대 논술이 아니었으면 공대 출신인 나에게 글을 쓸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때의 훈련이 시발이 되어 연애편지를 풍성히 하였고 하다못해 학보를 보낼 때의 짤막한 문장도 쫄깃하게 했으며 그것이 이어져 요즘의 카톡 문장도 나름 때깔 있게 쓰려고 신경 쓴다. 몇 번 교회나 건축사무소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특히 콩트나 우화를 써서 함께 실린 주변 글과 결을 달리하려고도 했었다.


작문이란 수기(手記)가 아닌 이상 쓰기 전에 사고가 필수적이며 쓰고 나서도 반복되는 탈고가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사색의 지평은 넓어져 쓸 때는 힘들어도 한바탕 운동한 듯 머리는 개운해진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신노동에 찌든 현대인에게 '정신운동'도 필요할 것 같다. 직업적 글 쓰는 게 아닌 이상 취미로 시작하여 즐기면서 쓰다 보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지며 사고의 영역을 확장할 때 운동으로 근육을 다지듯 뇌 근육도 울퉁불퉁 섹시해질 것이다. 남이 주는 작은 상처도 가볍게 튕겨내며 자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방어체계도 갖추고 시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팔랑개비도 되지 않으며 자기만의 무게중심으로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 덤으로 치매도 안 걸린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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