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늘의 일기입니다.
고양이들이 싸운다.
한참을 쫓아다니며 서로를 물고 뜯더니 이번엔 같은 이불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글 쓰는 내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너희들은. 싸움이 격해지는 것 같아 말렸던 내가 머쓱할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반면에 나는 지금 컴퓨터 책상에 앉아 실체 없는 녀석과 싸우고 있다. 바로 글쓰기다.
여러 개의 글을 길게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했다.
하지만 딱 떠오르는 글감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일기를 쓰고 있다.
아침에 남편이 입을 옷을 가지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공기에 깜짝 놀라 도망쳤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오전에는 우유를 마신 뒤 어젯밤의 설거지를 하고 고양이들과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며 소설 파친코를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1권을 다 읽어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2권도 빌려올걸. 내일이든 모레든 밖에 나갈 때까지 다음 내용을 알 수 없다니 답답하다.
종일 뭔가 자극적인 걸 먹고 싶었는데 요리하긴 귀찮고 배달하기엔 배달비가 비싸고 직접 나가자니 너무 추워서 그리고 그 와중에 살찔까 봐 걱정이 돼서 (있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 도루묵이지만) 그냥 우유와 커피로 하루를 났다. 사실 전혀 움직이질 않아서 저 정도만 먹고살아도 살은 안 빠진다. 직장인들이나 육아를 하는 엄마들에게는 정말 꿀 같은 휴일의 풍경이겠지만 세상엔 나 같은 인간도 있는 거니까. 죄책감 없이 지루해하기로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1월이 걱정되었다. 다름 아닌 추위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기로 한 것도 걱정이지만 이 추운 날씨에 출퇴근을 해야 한다니 끔찍했다. 이 와중에 추울 걸 걱정하는 게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겨울이 싫다.
아파트에서 동파방지를 위해 물을 24시간 틀어놓으라고 한 탓에 톡톡톡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 소리를 종일 듣고 있는 것도 싫다. 1년 내내 더운 나라에 살고 싶다.
참, 브런치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기담, 시]이다. 제목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시를 쓰려고 한다. 나는 본래도 공포영화를 좋아했고 요즘은 유튜브로 이런저런 공포물들을 찾아 듣곤 한다. 내가 사후세계도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크게 무서워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어떤 날엔 잠들 때도 귀신이야기를 틀어놓고 잔다. 할머니의 전래동화를 듣는 것 같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없다.
공포물들은 대체로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특히 우리나라 이야기는 다양한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듣는 재미가 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들을 시 속에서 이미지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된 프로젝트로 매주 금, 토 연재될 계획이다. 괴랄한 상상들을 잔뜩 하면서 빼먹지 않고 열심히 써 보려고 한다.
남편의 퇴근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이만하면 일기도 다 쓴 거 같은데 그 사이엔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장기 백수에게 늘 어려운 문제다. 아무것도 할 게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아무 말 대잔치 같은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브런치를 끄고 남은 시간 할 일을 찾아봐야겠다.
+막간을 이용한 고양이 자랑. 집사들은 자랑을 참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