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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Dec 13. 2023

카페에서 책 읽기에 적당한 금액

백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 출근하면 집안일을 하고, 책을 보다가 SNS도 구경하고, 글을 쓰며, 고양이들과 함께 꾸벅 졸기도 하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함께 저녁을 먹는다. 거의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일정한 나날들이다. 

 

내가 외출하는 건 바리스타 학원에 가는 날, 남편의 하루뿐인 휴일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이대로 게으르게 방구석에서 죽을 수는 없다.'라는 아찔한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런 날엔 부지런히 씻고 서점을 구경하러 가는데 사고 싶은 책은 많고 읽을 시간도 많지만,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서 책에 돈 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동네의 작은 서점에 들르면 꼭 책을 사야 될 것만 같아서, 애초에 발걸음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일을 시작할 새해가 되면 자주 서점에 들를 테니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아무튼 이런 날엔 집 앞 작은 도서관으로 간다. 


지난번에 빌린 3권의 책을 반납하면서 또 그만큼의 책을 빌렸다. 원하는 책 두 권을 찾지 못해 아쉬웠지만 출간 이후로 매번 대출되어 있어 보지 못했던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을 건졌다. 

기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는데 쉽사리 집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껏 씻고 나왔는데 30분 만에 돌아가긴 아쉬운 걸? 때마침 얼마 전 발견한 책 읽기 좋은 카페도 떠올랐다. 


커다란 통창을 가진 카페다. 슬쩍 보니 내가 좋아하는 창문 옆의 편안한 의자 자리가 비어 있다. 

이곳은 특이하게 바닥과 단차가 있는 곳이라 묵직한 문을 영차- 당겨야만 문이 열린다. 

방금 오픈 했는지 분주하게 정리하시던 사장님이 잠깐 당황해하시다가 "어서 오세요." 하며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내일부터 학원에서 공부하게 될 라떼아트를 예습하는 기분으로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예쁜 하트가 여러 개 그려진 음료가 나왔다. 다음 시간에는 꼭 선생님한테 칭찬받아야지 의지를 잠시 불태우며 사진을 찍고 한 모금 마신 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손님은 나 혼자였고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댄 채 책을 읽다가 발견한 좋은 글귀는 수첩에 적었다.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집중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려 16명의 단체손님이 들이닥친 것이다. 

카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손님들이라 사장님도 무척 분주해지셨다. 각각 떨어져 있던 테이블을 하나로 합치고, 몇 번이나 화장실 앞은 막지 말아 달라고 주의를 주고 또 주고 했지만 결국 화장실 앞까지 의자로 채워졌다. 근처 초등학교의 학부모회 회원들이었는데 커피 만드느라 바쁜 사장님까지 소환하여 단체 인증샷을 한참 동안 찍더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학습 환경과 동아리 활동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필 "제 커피는 언제 나오죠?" 라며 왔다 갔다 하는 동선이 내 자리 쪽이라 더 정신없었다. 


책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책 읽으러 온 건데... 

집으로 가야 하나 생각하니 커피값 5,000원이 걸렸다. 아깝잖아.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에 힘을 가득 주어 쭉 내민 채 (최근에 알게 된 집중하는 내 모습이다.) 최대한 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니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상당한 양을 읽어냈다.


시간이 흘러 단체손님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어느새 3명의 회원들만 남았다. 여전히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틔였다. 


그런데 문제는 책의 뒷부분이 아주 조금 남았는데 시계를 보니 내가 들어온 지 한 시간 반이 넘어 있었다.

소심함의 극치를 달리는 나는 사장님 눈치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남았는데 집에 가야 되나? 저 사람들도 여태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있을 것 같은데... 아니지 저 사람들은 단체로 와서 많이 팔아줬잖아. 그렇지. 그럼 나는 음료를 하나 더 마시면서 책을 끝마쳐야 되나? 그럼 10,000원이나 써야 되는데 그 돈이면 중고서점 가서 책을 살 수 있었는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혼자 안절부절못하다가 돈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뜩 들어 짐을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카페에서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기에 적당한 금액은 얼마 정도 일까?

나 같은 소심인들을 위해 시간당 얼마라고 정해진 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일단은 내가 돈 걱정 없이 음료를 한번 더 마시도록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

 

어쨌거나 집에 와서 [끝내주는 인생]은 끝까지 잘 읽었지만 카페에서 커피 향과 함께 책을 폈을 때 느꼈던 그 설렘은 조금 사라져 버려 아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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