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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Dec 12. 2023

칭찬 잡아먹는 아주머니

질투는 나의 힘...!

지난달부터 바리스타 자격증반에 다니고 있다.

수강생은 나와 아주머니 단 두 명이다.

포천의 베이커리 카페에서 총무로 오랜 시간 근무하다 퇴사한 아주머니는 바리스타가 아닌 사무직으로 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너머로 본 커피 머신 다루는 법, 각종 음료 만드는 법, 로스팅하는 법까지 소소하게 많은 것들을 알고 계셨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진다.

"어머, 되게 눈썰미가 좋으신 거 같아요. 지금 이야기하신 게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커피를 마시는 것만 좋아하지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나는

조용히 그 칭찬에 동조하며 조금은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다.

그럼 아주머니는 더 신이 나서 카페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다.

잔잔한 미소를 띠며 아주머니를 바라보던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경험담으로 화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언젠가는 커피를 종류별로 내려보고 향미를 구분해 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실 맛에 예민하지 못한 데다 신맛에만 유독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서 적당한 선의 표현을 골라내는데 한참다.

'산미가 강하고 고소한 아몬드 향미...?'

머릿속으로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아주머니가 정답을 발표한다.

"이거는 신맛이랑 고소한, 견과류 향에 끝에는 단맛이 도네요."

"네, 맞아요. 미각이 되게 섬세하신 것 같아요."

"우리 가게에서 팔던 커피는 산미가 거의 없는데 이건 마시자마자 바로 올라오네요. 추출 시간도 영향이 있는 것 같고."

"그렇죠. 맞아요. 정말 잘 하신다. 옹이 님은 어떠세요?"


쳇, 아니 뭐가 어떠냔 말이다.

이미 아주머니가 정답을 이야기했고 선생님이 맞다고 칭찬 세례를 퍼부어 주셨는걸.

난 이번에도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산미와 단맛이 고루 느껴진다는 간단한 평을 내놓았다.  


사람이 둘 뿐이라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한 대의 머신을 돌아가며 사용하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카푸치노를 만들기로 했다.

2급 시험 이후로 처음 만드는 거라 조금 긴장하며 만들었다.

시험 볼 때는 나름 칭찬받은 솜씨였는데 오늘의 카푸치노는 영 엉성했다.

선생님은 거품낼 때 거품의 양이 조금 적었던 것 같다, 컵에 따를 때 손의 각도가 틀어져서 그렇다며

다음번에 다시 교정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아주머니의 차례.

세상에, 배우지도 않은 하트모양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신다.

또다시 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진다.

"하트모양을 완벽하게 만드셨네요. 거품도 너무 좋고요, 얼른 핸드폰 가져와서 사진 찍으세요! (나를 보며) 진짜 예쁘게 잘 만드셨죠?"

"손으로 거품 내는 거를 샀는데 마침 지인이 안 쓰는 커피머신 작은 걸 줘가지고 집에서 몇 번 연습해 봤어요."

"그렇구나. 정말 대단하세요. 이 정도면 라떼 배울 때도 별 무리 없으실 것 같아요. 진짜 잘 만드셨다."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은 나는 여러 번 연습을 시도해 보았지만 너무 잘하는 아주머니에게 솔직히 기가 좀 죽은 탓인지 손이 덜덜 거리고 좀처럼 예쁜 모양이 나오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들었을 때는 겨우 "중앙에 잘 맞게 만드셨네요. 거품도 좋고요. 이 정도면 형태는 잘 나오는 거예요."라는 작은 격려를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정리타임,

내가 설거지를 맡아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주머니의 자랑과 선생님의 칭찬은 끊이지 않는다.

"이것도 제가 직접 만든 거고요, 저것도."

"저번에 주신 수세미도 정말 잘 쓰고 있는데 손재주가 많으신 거 같아요. 커피 배우는 것도 그렇고."

"이런 건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만들어 드릴게요."

"혹시 가방에 키링도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만들어봤어요."

"너무 귀엽다. 뭐든 샤샤샥 잘 만드시네요."


설거지를 하면서 아주머니가 칭찬 잡아먹는 괴물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커다랗고 까만 입을 가진, 온 세상의 칭찬을 모두 빨아들이는 칭찬 괴물!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숨어 질투심이 폭발한 채 굴러다니는 돌 덩어리 처럼 느껴졌다.


예전부터 나는 질투에 약했다.

크던 작던 내가 속해있는 단체에서는 늘 1등을 하고 싶어 했다. 잘하다 그만둔 것들을 살펴보면 내가 1등이 될 가능성이 없어졌을 때 갑자기 의욕을 잃고 결국 그만두게 되었던 것 같다. 치명적인 단점이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완벽하고 싶어 하니까.


2급반에서도 내내 아주머니만 칭찬받는 상황에 내상을 조금 입긴 했지만 어렵게 시작한 커피 수업에 대한 의욕을 이렇게 쉽게 잃을 수는 없다.

특히 커피 내려주는 책방 창업이 목표가 된 이상(먼 미래의 일이지만) 열심히 배워서 커피를 잘 내리는 책방 주인이 될 테다. 질투 나는 만큼 쫄지 말고 더 힘을 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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