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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Dec 20. 2023

고요한 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집 안이 고요하다. 

바로 고양이들의 낮잠 시간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긴 하지만 예민한 친구들이라 청소기도 무서워하고 바스락 하는 작은 소리에도 금세 일어나 버리기 일쑤라 일부러 이 시간에는 집안일도 큰소리가 날만한 일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온전히 잠에 빠져들길 바라면서. 문제는 나도 이 시간에 고양이들을 지켜보다가 잠드는 바람에 1시간씩 낮잠을 자게 돼버린다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듯 고요한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썩 집중이 잘 되지는 않는다.

내 눈앞에 펼쳐진 집안 꼴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도 아 바닥 청소 해야 되는데, 설거지가 쌓여 있네, 쓰레기도 버려야 하는데 하면서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기저기 고양이들의 흔적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무척 눈에 거슬린다. 

아직 1살이 채 되지 않은 활달한 아기고양이 고돌이가 대부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신이 나서 모래를 잔뜩 묻혀 돌아오고, 구석구석 숨겨진 장난감들을 어디선가 찾아내 갖고 놀다가 아무 데나 놓아두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느라 거실 캣타워는 작은 방에 발매트들은 방 한가운데 놓여 있다. 어휴 아기 고양이 한 마리의 위력이 이 정돈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떨지 상상도 못 하겠다. 


게다가 반주를 즐겨하는 우리 부부는 항상 상당한 양의 설거지를 만들어 내는데 먹고 나면 늦은 시간이라 '내일의 내가 치우겠지.' 하는 마음으로 설거지를 놔두다 보니 좁은 부엌에 설거지가 큰 존재감을 뽐내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베란다에 내놓은 술병들의 영롱한 자태는 또 어떤가. 이럴 때면 내가 쓰레기장에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점심까지 먹는 나에게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이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 더 이상은 안돼.'라는 생각이 솟아나 나를 뒤에서 힘껏 밀어 댈 때 쓸 에너지가 충전되어 결국엔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쉬어주려고 한다. 살만한 우리 집을 위해. 


쓰고 보니 인생에서도 그런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년은 내게 고요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비록 주변에 온갖 실패와 우울함과 자기 비하가 쓰레기 처럼 널려 있었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먹고 살아남았더니 어느샌가 움직일 에너지가 생겨난 것 같다. 이제까지의 '더 이상은 안돼'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생각이 되었다. 살만한 내 인생을 위한 고요한 시간.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 충분히 움츠려 있다가 곧 벌떡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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