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담에 대한 미련이 자꾸 나를 잡았다.
그저 나와 맞는 상담쌤을 찾지 못한 게 아닐까.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서
많이 회복했다는 친구의 말이 귓가에 떠돌았다.
우울함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내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문제의 원인인 나는 그대로인데,
언제 다시 우울감이 나를 덮칠 지 몰랐다.
이번에는 책을 보고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잃었지만,
여전히 심리학에는 의존하고 있었다.
현대 의학을 믿지 못해 민간 요법으로 다스리는 것처럼
나는 직접 자가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심리학 책을 마구잡이로 사모았다.
반 정도는 읽었고, 반 정도는 사두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가 한 책을 통해 집단 상담을 알게 되었다.
전남친은 내게 늘 화가 많다고 했다.
길에서 누가 나를 치고 가도, 혼자 짜증내는 것조차 화가 많은 거라고 했다.
틀린 말에 반박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의하는 것도,
어떤 토픽에 대해 내 주장을 하는 것까지,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화"로 보였다.
문제는 그거였다.
그에겐 화가 희노애락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 아니라
숨기고 고쳐야할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생각대로 내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가 많은 나,
잘못된 나,
모든 것들의 원인이 된 나.
책에는 그런 나같은 사람들이 상담소를 방문했다.
화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책의 주인공들이었고,
그들은 여러 상담을 통해서 성격을 바꾸었다.
나도 잘못된 나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스쳤다.
당장 센터를 검색하고, 예약을 했다.
찾아간 센터에서는 간단한 검사를 했다.
몇장의 문항을 풀고, 제출했다.
잠시 뒤 센터장이 들어왔다.
센터장은 나를 보더니 기질적으로 화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기질적으로 많다는 것은 즉, 화가 많은 성격이란 말, 타고 났다는 말인데
그럼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일까?
그런 불안감에 다시 빠졌다.
센터장은 가정환경이나 그 외의 질문들을 하고는
기질 검사 결과를 함께 보자고 했다.
그런데 기질 검사 결과표에 우울은 점수가 높았지만, 화는 정상수준이었다.
제가 화가 많은 편인가요?
나는 결과표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센터장은 결과표를 다시 보더니, 말을 고쳤다.
화가 기질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라고.
그렇지만 화가 많다고 이어 말했다.
어떤 지표를 바탕으로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했지만, 화가 많다는 말은 전남친에게 늘 들어왔으므로 그냥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차 가스라이팅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심, 화가 많은 기질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기질적으로 화가 많다고까지 나왔다면 나는 어쩌면 무망감에 좌절했을 지도 몰랐다.
나는 고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주저앉았을 지도 모른다.
그 마음과 상관없이, 센터장은 계속 내게 화가 많다고 말하였다. (??)
센터장은 나같이 화가 많은 사람은 집단 상담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단 상담 영상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안에서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적해주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객관화하며
화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너무, 싫었다.
화를 내는 것 자체에 지쳐있었다.
화를 누르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다 힘들었다.
화가 없는 평화로운 상태에만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하려는 건데,
자꾸 나에게 집단 상담을 권했다.
집단 상담을 거절하자,
개인 상담도 가능하다고,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센터홈페이지에서 맘에 드는 선생님을 고르고 약속을 잡았다.
상담 소개 영상에서 굉장히 당당하고 직설적인 느낌이 좋았다.
선생님을 만나고 상담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선생님과의 항해가 순탄할 것이라고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