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꿈
내 책상 위에는 탁상달력이 있다.
달력을 보니 아직 8월이다.
그리고 보이는 칠석이라는 글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 떠 올랐다.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여름방학쯤일 것이다. 여름엔 더워서 낮잠을 자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잠시 자다가 일어났는데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 꿈 내용은 이랬다.
넓디 넓은 정원에서 둥근 테이블을 두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푸른 초원 위에 있는 듯 온통 초록이었고 넓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문득 내 손목을 보니 시계가 고장난 것을 알았다.
갑자기 시계가 왜 멈추었지.
그때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자신이 시계를 고쳐주겠다고 했다.
바로 고쳐지지는 않으니까 딱 한 달 뒤에 여기서 보자고 했다.
꿈을 깨고 한 달 뒤를 세어보니 그 날짜가 바로 칠월 칠석이었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 일치가 신기하고 이상했다.
칠월 칠석은 다가오고 나는 꿈속의 약속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꿈에서 봤던 장소는 없었다.
그냥 그 날을 보내버리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동생을 꼬셔서 절에 가기로 했다.
칠월 칠석에 절에 가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칠월 칠석이라고 어떤 행사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와 동생은 대웅전에서 간단하게 묵념과 삼배를 하고 절 주변을 돌아보다가 집에 왔다.
꿈은 꿈일뿐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꿈은 나를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한참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났고 오늘 또 그 꿈을 떠올리니 이게 뭔 일인가.
꿈을 꾼 당시에는 하이틴 로맨스처럼 낭만적인 그 누군가가 나타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은 왜 아직도 그 꿈이 생각나지 정도이다.
그 꿈은 뭘까.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잊혀지지 않는 꿈이나 어떤 장면들이 있다.
견우와 직녀. 그들은 사랑했지만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사랑만 하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는다. 떨어져 지내다가 칠월 칠석인 날 딱 하루 만날 수 있게 된다. 절절히 그리워 하다가 만나는 하루. 어떠했을까. 그립고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렀을 것이다. 그러니 이날만 되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거 아닐까.
그런데 옥황상제가 노여움을 풀었다는 대목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계속해서 벌을 내리는 건 너무 가혹하다. 언제쯤 이 벌을 풀었을까.
아니면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1년 365일 중 딱 하루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 하루보다는 364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20대에 꾼 낮잠 속의 그 사람과 시계와 칠월 칠석이 뭔 상관이 있다고 나는 여지껏 이걸 잡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