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쫙 편다. 그 둘레를 그리면 둥그런 원이 생긴다. 딱, 그 크기만큼의 원이다. 밝은 노란색과 하양을 적절하게 섞은 색을 지니고 있다. 가로세로의 줄 사이로 빼꼼하니 보이는 사과의 향과 맛. 부드러운 감촉과 달콤함에 입안에서 침이 고인다. 가로세로 격자무늬들 속에 있는 사과가 보일락 말락 한다.
내가 좋아하는 애플파이다.
빵집에 가면 여러 종류의 빵들을 고르다가 마지막으로 손이 가는 빵. 마지막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빠뜨리지 않고 꼭 산다는 의미이다. 28년 동안 사과의 달콤함에 녹아내렸는데 …. 28년에서 멈추었다.
아픈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그 자리는 다른 사건으로 덮어진다. 애플파이에 대한 상처 역시 어느 정도 아물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먹지 않는다. 먹지 못하는 게 아니라 먹지 않는다. 그냥 안 먹고 싶다. 그 상처는 분명 아물었다.
어느 여름날, 시원한 팥빙수와 애플파이를 주문하고, 달콤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이나 말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원한 팥빙수를 숟가락으로 잘 비벼서 둘이서 먹었다. 입 안에 녹아드는 얼음과 팥의 달콤함이 짜릿했다. 나는 웃으며 그의 눈을 보았다. 그는 무덤덤하게 먹고 있었다. 맛이 없나?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럼 내가 더 먹으면 되지. 기분 좋은 생각으로 다 먹고 잘 구워진 애플파이를 먹으려고 빵을 잡았다. 한 입 베어 물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영화 봤다며? 누구랑 간 거야?”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저번에 얘기했던 걔랑 갔어.”
“뭐? 그 후배? 왜 자꾸 걔랑 다니는데? …”
“…….”
“걔한테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안 한 거야?”
“했어.”
했다고? 그런데도 계속 만난다고? 나는 애플파이를 조금 베어 물고 있었다. 달콤한 맛이 나야 하는데……. 와구 와구 먹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애인이 있는 남자를 자꾸 만나는 건 뭐고, 애인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심리는 뭐지. 복잡한 생각에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손에 든 애플파이를 내려놓았다.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나와 잠시 시선을 맞추다가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우리가 사귄 지 3년. 뜨거웠던 시간은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를 좋아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내게서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물어야 하지.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이 일순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닐 거야. 한참을 뜸 들이다가 얘기를 했다.
“걔 좋아하니?”
“…….”
그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선을 멀리 두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그가 미웠다. 아니라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는 말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야 너 양다리였어?
나 갖고 논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삼켰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있는 그를 내가 만나야 하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그의 양다리는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그녀를 만나기 시작한 지가 벌써 몇 주는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관계가 시들해질 무렵인 것도 같다. 그에게 여자 후배는 새로움이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만나면 마냥 즐겁고 신나는 존재겠지? 우리는 뭘까. 물 마시듯, 매 끼니를 챙기듯, 무의식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된 건 아닌가. 나랑 사귀고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길고 불편한 침묵을 깼다.
“우리가 그만 헤어져야 하는 거네. 네 마음이 이미 다른 데 가 있으면….”
나는 대답 없는 그를 두고 제과점을 나왔다. 그는 따라 나오지 않았고, 나를 잡지 않았다. 제과점을 나오면서 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후배라는 여자와 친해졌다고 할 때 그냥 둔 내 잘못인가. 분명 잘못한 사람은 그인데 자꾸 나를 탓하게 되었다.
전화가 울리면 혹시 그가 아닌가 조바심을 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돌아올 것 같아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정리를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는 오래 사귄 나보다 이제 막 시작한 그녀가 더 좋은 모양이었다. 돌아선 그의 마음을 어찌 돌리나. 이미 떠나가고 없는걸. 내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하루는 떠난 그를 미워하다가, 하루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속이 탔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적인 확률은 떨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막 들어왔는데 전화가 울렸다. 반가운 마음에 받았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누구세요” 대답 없는 전화기가 잘못된 건가 수화기를 다시 확인해 보고 전화선을 다시 봤지만 이상은 없었다.
처음엔 잘못 걸려 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그날부터였다. 퇴근하고 집에 있으면 전화가 울렸다. 받으면 말이 없었다. 다시 얼마 있다가 울리기를 반복했다. 말이 없는 전화가 주는 불안감, 긴장감, 초조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전화는 하루에 수 차례 반복되었다. 가볍게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로 바뀌었다.
전화가 울리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놀랐다. 전화 소리가 무서워졌다. 전화가 울리고, 받으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 듣고는 있었다. 누구세요. 야, 누구야. 장난 그만해라.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말이 없는 전화는 계속되었다.
회사 동료에게 집으로 오는 전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혹시 남자친구가 그러는 거 아니야?”
라며 물었다.
“아니야. 걔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야.”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헤어지자고 해서 헤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그럴 수도 있잖아.”
“아니야. 만약 미련이 남았다면 찾아왔겠지. 집을 아는데 굳이 전화해서 내 목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잖아. 내 목소리를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렇기는 하네. … 그럼 …그 여자 아닐까?”
“뭐? 걔랑 만나고 있는 그 여자 말하는 거야? … 뭔 이유로?”
“이유라…….”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걔랑 사귀는 그 여자가 전화를 할 수도 있을까.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을 해야 하잖아. 알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나를 모른다. 나 역시 그녀를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서로 만나지 않았기에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서로의 존재는 안다. 그녀는 걔를 만날 때 이미 여자친구가 나라는 것을 알았고, 나 역시 헤어지면서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만약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한다면 이유가 뭘까?
일주일 넘게 계속되는 전화 소리에 참기가 힘들어졌다. 처음엔 이게 뭔가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가, 더 시간이 지나면서 도대체 누가 이러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스트레스와 약간의 공포와 궁금증은 복합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전화국에 내 상황을 설명하면서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 있냐고 물었다. 바로 알려줄 수는 없고, 계속해서 전화를 하는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 기록을 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참 이상했다. 같은 상황인데도 기록을 해 오라는 말에 공포심은 조금 가라앉았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견딜만했다. 이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날부터 나는 전화가 오면, 시간과 얼마 동안 지속되었는지 기록했다. 이상한 전화를 받으면 당황하지 않고 상대방이 끊을 때까지 들고 있었다. 어떨 때는 짧게, 어떤 경우엔 몇 분을 지속한 적도 있었다. 들고 있다가 너무 길어지면 내쪽에서 끊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 기록을 하고 전화국에 갔다.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더니, 상대방을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전화가 울리고 나는 받았다. 역시 말이 없었다. 바로 끊고 전화국에서 알려준 방법대로 번호를 누르니 전화를 한 상대방에게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일단 끊었다. 여자고 상대방 번호를 알게 되었으니 확인을 해야 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약간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가 약간 반가웠지만 애써 아닌 척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사귀고 있는 그 여자 집 전화번호가 000에 0000 맞아?”
그는 약간 놀라는 듯 어떻게 아냐고 했다. 나는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그는 차분하게 들으면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아직도 이해는 안 돼.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지. 무슨 이유로 내게 자꾸 전화하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해줘.”
“알았어. …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해. … 너한테 전화를 한 거는 아마 … 나를 믿지 못해서 그럴 거야. 자기를 만나지 않을 때 너랑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거야. 매번 만날 때마다 확인하거든. … 또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못 믿으면서, 불안해서 어떻게 사귄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 아무튼 이제 전화하지 말라고 해.”
그는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간은 조용했다. 이제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회사 동료와 즐겁게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전화 스토커가 끝났다는 시원함에 그날따라 맥주가 맛있었다.
회사 동료인 희숙은 현재 약혼자가 있다. 커플 반지가 아닌 약혼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본 게 희숙이 유일했다. 나는 궁금함에 물었다.
“그냥 결혼식을 하지, 왜 번거롭게 약혼식을 했어?”
“어? … 우리 집이나 그 사람 집안이 그냥 자연스럽게 약혼식을 하자고 해서…, 별로 번거롭지 않았는데. 하 하 그래, 너는 뭐든 형식적인 거는 좀 거추장스러워하지.”
약혼식을 왜 했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기에 내 말에 놀랐다고 했다. 나는 단순한 궁금함에 물은 것이었다. 결혼식을 하면 되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약혼식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냥 남자친구로 있을 때랑 약혼식을 하고, 반지를 끼고 있는 거랑 뭐가 좀 달라?”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보통 둘이 사귀다가 좋아하게 되면 커플 반지를 하게 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음… 조금 다른 것 같아. 우선 집안끼리 다 인사를 한 거잖아. 우리가 약혼식을 한 걸 친구들은 다 알고. 저 사람은 이제 내 사람이구나 하는 안심이 되는 부분이 좀 있어.”
“그렇구나. 근데 공개적으로 약혼을 하고 좀 시간이 지났잖아. 5개월? 그쯤 되었나? 결혼식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는 거야?”
희숙은 내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생각은 하고 있는데…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희숙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둘의 애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 된 거지 뭐.”
나는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를 하면서 쓸데없는 말로 위로를 했다. 안주를 먹고 있던 희숙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좀 그런 것은 있는 거 같아. 약혼식을 하고 시간이 지나니 결혼식이 무슨 숙제처럼 느껴지는 기분은 있어. 그 사람이 내 사람이기는 한데 ……조금 시들해지는 느낌도 있고.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좀 싫기는 하지만…….”
“내가 괜한 것을 물어봤네. 미안해. 이놈의 호기심. 미안해. 미안해. 자 마시자.”
희숙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약혼이 길어지면서 깨지는 경우를 꽤 봤기에 나도 모르게 불안함을 드러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약혼식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약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가 두 번이나 연기를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연기한 것은 그녀가 아닌 상대방이었다. 그렇게 두 번 연기하다가 결국 파혼을 했다. 파혼을 당하고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파혼을 했는데 왜 회사를 떠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연기되면서 파혼을 당하니 아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파혼으로 정신적인 상처를 받아 쉬고 싶을 수도 있다고…….
약혼이라는 것은 결혼을 전제하는 약속이다. 살다 보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속의 크기와 약속의 무게와 상관없이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있다. 어찌 보면 약속이라는 것은 깨질 위험이 있기에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은 평온한 날들이었다. 아직은 전화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이상한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이제 끝난 모양이라고 생각할 즈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조용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느낌이 싸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 도진이랑 사귀는 사람이지?”
“……”
말이 없었다. 말이 없다는 건 맞다는 얘기였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나한테 왜 전화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헤어졌고, 다시 만날 생각 없으니까 나한테 이딴 식으로 전화하지 마.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런 식으로 계속 전화하면서 괴롭히면 …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네가 전화한 기록 다 있어. 이제 더는 안 봐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잔 마셨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 헤어진 것도 속상한데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속상하고 짜증이 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흘렀다. 그렇게 한동안 울었다.
내가 하는 연애는 왜 이 모양인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전화로 괴롭힘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그때가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하고 맞이한 첫여름방학이었다. 청주에 있는 이모집에 놀러 갔다. 청주 이모는 방학이 되면 나를 불렀다. 사촌 동생들과 놀아주라는 의미도 있었고, 방학이니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쉬라는 뜻이었다. 이모집에 가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마음껏 놀 수 있었다.
며칠 신나게 노는데 이모부 동생이 학교 후배들 몇 명을 데리고 왔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어울렸다. 그중의 한 명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주소를 물었다. 전화번호와 주소를 주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편지가 왔다. 그 아이가 보낸 것이었다. 나와 동갑이었고 자신은 창원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편지가 오갔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전화가 왔다. 그 아이였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가까운 산에 등반을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차비가 없으니 와 달라고 했다. 살짝 당황했지만 그럴 수도 있으니 터미널로 가서 차표를 사 주었다. 산에 다녀왔다고 했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배가 고파 보여서 빵과 우유를 사 주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 차표값을 주겠다며 고마워했다.
며칠 후 이모가 우리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냥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일 뿐이라고 했지만 이모는 완강하게 말했다. 더 이상 편지나 전화로 연락하지 말라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이모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상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 더 이상 연락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가 편지하고 전화하는 걸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 아이는 화를 냈다.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계속 연락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 아이는 그렇게 했다. 편지를 보내고 수시로 전화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받고, 엄마가 받으면 말없이 있다가 끊었다. 나는 집에 있어도 그 아이의 전화일 것 같아 받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전화벨 소리가 공포였다. 전화기 소리가 그렇게 큰지 예전에는 몰랐다. 소리가 울리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었다. 소리가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한 달이 지날 즈음 조용해졌다. 그 사건 이후로 누군가를 아는 건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걔를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난 걔는 굉장한 놈인가. 아니다. 그냥 평범했다. 어찌 보면 외모는 평범에서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었다. 보통 키에 살이 조금 찐 편이었다. 피부는 하얗지만 피부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직도 여드름이 나는지 여기저기 짠 자국이 있었다. 말투는 차근차근했다. 매너가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었고, 길을 걸으면 항상 나를 안쪽으로 걷게 하였다. 식당에 가면 수저를 세팅해 주고, 물도 떠 주었다. 사소한 친절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런 식의 배려는 처음이었다. 그의 배려에 내가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지치고 힘들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빠져들었다. 직장생활 자체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괜찮았다. 문제는 실적이었다. 전화로 물건을 파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파는 물건은 영어와 일본어로 된 잡지였다. 이 잡지는 꽤 많이 알려져 있었고 인지도도 있었다. 서점에서 파는 잡지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필요했다. 우리는 한 달이 아닌 1년 구독자를 모집하였다.
처음 통화가 제일 힘들었다. 전화 연결이 되면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물건에 대한 짧은 소개를 했다. 상대방이 시간적인 여유와 통화할 의사를 보이면 고객에 대한 질문으로 방향을 튼다. 30대 후반은 진급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기에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인다. 40대의 아저씨들은 자기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직함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하면 약간 으스대며 좋아했다. 그렇게 친밀도를 쌓고 상품에 대한 가벼운 정보를 남기고 통화를 마쳤다.
첫 번째 전화에서 물건을 파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조바심을 버리고 다음을 기다린다. 그리고 고객카드에 메모를 했다. 통화하면서 얻은 정보 역시 기록했다. 첫 통화를 마친 고객에게는 상품에 대한 팸플릿과 간단한 엽서를 보냈다. 이 엽서에 정성을 들였다. 직접 손으로 쓰면서 색깔까지 입혔다. 우편으로 받은 엽서에 감동하여 정기구독자가 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건을 잘 파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우리 팀의 인원은 6명이다. 그중에서 두 명은 하루에 하나를 팔 정도였다. 유대리와 진대리.
유대리는 교육 때 배운 기본대로 했다. 고객과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물건을 팔았다. 밝은 성격 때문에 더 잘 파는 것인가. 유대리는 긴 머리에 약간 통통한 몸이지만 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추었다. 술도 좋아하고 잘 마셨다. 애교가 넘쳤다. 가끔 우리 팀이 나이트클럽에 가면 유대리의 춤에 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역시 그녀의 춤에 반했다. 유대리는 춤을 좋아하고 잘 추었다. 클럽 웨이터는 유대리에게 서비스를 많이 주었다. 과일 서비스는 기본이고 마른안주 서비스도 받았다. 부킹을 하기 위한 전초전이지만 우리는 맘껏 받고 적당히 봐서 나와 버렸다. 부킹을 좋아하는 몇은 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춤만 추다 왔다.
반면 진대리는 마른 체형에 눈이 컸다. 여려 보이는데 강단이 셌다. 진대리는 연애 선수였다. 아주 예쁜 얼굴은 분명 아니었다. 근데 남자들이 잘 꼬여 들고 많았다. 진대리는 3년 사귄 남자친구를 군대로 보낸 날, 엄청 울었단다. 너무 슬퍼서 나이트클럽에 갔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마음에 들어 사귀었단다. 본인 입으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기가 막혔지만 담담한 척 듣고만 있었다.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는 물론 비밀이었다. 충격에 탈영할까 봐 한참 동안 말하지 못했단다. 진대리는 애교가 많은데 옆에서 들으면 느끼함에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좋아했다.
나는 수골백번 태어나도 못할 행동이었다. 진대리는 고객과의 경계가 없었다. 물건을 판 고객과 자주 만나더니 결국 사귀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더니 사귀는 남자친구가 사무실 사람들에게 물건을 소개해 주어 엄청나게 팔았다. 그달에 진대리는 3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급여와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까지 챙겼다.
잘 나가는 유대리나 진대리와 달리 나와 유영이는 물건을 못 파는 축에 들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우리 둘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애를 먹고 있었다. 나름 서울말을 하지만 상대방은 다 알아챘다. 그나마 그런 우리들의 말투를 귀엽다고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텔레마케터라는 일이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유영이도 힘들어했다. 학습에 필요한 잡지며 유익한 것이기는 했지만 물건을 파는 것은 어려웠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하고, 그들에게 내가 파는 물건이 꼭 필요한 일임을 말하는 게,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했고, 억지로 강매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팔 때는 미안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파는 건 상품에 대한 가치를 떠나서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아야 할 것 같았다. 시장에서 가격조차 깎지 못하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한 달은 그냥 지나갔고 또 한 달은 좀 더 있어 보자는 마음이었고, 다시 한 달은 너무 쉽게 그만두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시간은 가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진대리와 유대리의 실적이 좋게 나올수록 내 기분은 떨어지고 있었다. 잘하는 사람의 실적을 칭찬해 주고 보너스를 줄수록 부족한 사람들은 위축되었다.
말을 많이 한 날은 목이 아프고 팔이 아팠다. 급여를 받는 날이 되면, 받는 급여만큼의 가치처럼 내 존재가 낮게 느껴져 어깨가 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되었다. 어쩌면 일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전화로 고객을 찾아 헤매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만두기는 해야겠는데 그 시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만두어도 되는데 뭘 망설이고 있었던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다.
그날도 복잡한 지하철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내가 내릴 역에 거의 다 와 가는데 갑자기 눈이 이상했다. 지하철 공기가 건조하여 렌즈가 빠지려고 했다. 렌즈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조심하면서 눈 안에 있는 렌즈를 잡으려고 했다. 오른쪽 눈에 있는 렌즈를 잡는 순간 열차가 정차하면서 내 몸이 움직였고 간신히 손가락에 잡혔던 렌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헐. 아침에 뻑뻑하니 잘 들어가지 않더니 기어이 나오고 말았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내려지지 않았다.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렇게 가고 가고 가서 나는 종착역에 내렸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야 하나 살짝 망설이다가 관두었다. 종착역에 내리니 배가 고팠다. 아침을 먹기는 했다. 그러나 배가 고팠다. 어묵과 토스트를 파는 곳이 보였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토스트를 먹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어묵 역시 적당히 익어서 부드러우면서 고소했다. 어묵 두 개와 토스트를 먹고 나니 행복해졌다. 주변을 걸어 보기로 했다. 아침이라 사람들은 모두 분주했다. 그들의 바쁜 표정과 서두르는 행동을 보며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가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땡땡이친 학생처럼 불량스러운 사람이 된 듯했다. 하루 결근하는 맛이 몰래 먹는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하여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말했다. 내 자리에 있는 물건을 정리했다. 특별히 많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으며 우리 팀의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실장은 며칠 있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가진 고객리스트는 유영에게 주었다. 어떤 상태인지 이미 체크되어 있어서 설명이 필요 없었다.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다른 팀에게는 퇴근하면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며칠 놀다가 벼룩시장을 보며 내가 할만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신입 가능’이라는 글자에 시선이 갔다. 전화를 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출판사는 작고 아담했다. 직원 역시 몇 명 되지 않아 보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거리도 가까웠다. 사장은 내게 몇 마디 물어보지 않았는데, 과장이 질문을 많이 했다. 떨리거나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샀다. 나 혼자만의 저녁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의외로 즐거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긋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한지 물었다.
작은 출판사라 아담하고 정갈했다. 내 또래의 희숙, 네 살 많은 과장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영업에 두 명이 있었다. 실질적인 일은 과장이 다 했다. 과장은 교정을 봐야 할 원고를 주면서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가르쳐 주었다. 새로운 일은 재미있었다. 공무원수험서를 만드는 출판사인데 출판된 교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주일 정도는 퇴근을 정시에 했다. 그 이후엔 야근이 일상이었다. 일에 대한 즐거움은 야근을 해도 힘든 줄 모르게 했다.
희숙의 표정이 며칠 전부터 엉망으로 보였다. 우리가 야근할 때에 개인적인 일이 있다며 일찍 퇴근했다. 김 과장과 나는 설마 하는 일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희숙은 저녁을 자신이 산다며 한잔하자고 했다. 회사 부근에 있는 호프집에 갔다. 소시지 야채볶음, 감자튀김, 알탕은 우리의 배를 채워 주었고 맥주는 덤이었다.
“너 괴롭히는 전화는 요즘 어때?”
과장이 내게 물었다.
“예. 최근에 한 번 왔을 때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고 나서는 잠잠해요.”
“걔는 왜 너한테 계속 전화를 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희숙이 술을 마시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이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야. … 걔의 말에 따르면 … 자기를 못 믿어서 그런 것 같다네. 둘이 안 만나고 있을 때 혹시 나랑 함께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거였데.”
“참~ 피곤하게 산다.”
과장은 이제 툴툴 털어 버리라며 내게 잔을 부딪쳤다. 희숙은 한 잔 시원하게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과장님, 저 결혼 날짜 잡힐 것 같아요.”
이 말에 우리는 거의 동시에 놀랐다. 결혼이라고?
“아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더니 … 결혼이라고?”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얼마 전에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적금이 내년에 만기니까 그때 했으면 좋겠다고….”
“그럼 내년에 하면 되잖아. 결혼을 그렇게 서둘려야 할 이유는 없지 않아?”
그러면서 우리는 혹시 임신? 하는 생각으로 희숙을 보았다. 희숙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냥 빨리 같이 지내고 싶어요. 어차피 전셋집을 구할 건데 금액이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 문제로 그 사람과 의견이 잘 맞지 않아 힘들었는데,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해결했어요. … 예단을 줄이고 저희 집에서 전셋집 구하는데 보태는 걸로 하면서 결혼 날짜를 잡으려고 해요. 4년을 사귀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진 적은 없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 결혼식장과 집을 알아보려 다녀야 해서 얼마간 일찍 퇴근해야 할 것 같으니 좀 봐주세요.”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겨 헤어지려고 하는 건 아닐까 예상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미리 축하한다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남녀 간에 헤어짐만 있는 건 아니네. 이렇게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구나. 축하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 한편은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결혼 자체가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동료가 먼저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시간은 많은 것을 잊게 하고, 상처 역시 아물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람에 대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빵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애플파이만 보면 그때 그 장소가 떠올라 힘들었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