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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Oct 26. 2024

가면


 오빠가 죽었다. 자살을 했다. 이제 내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 식구 중에서 남은 사람은 이제 나 혼자다. 나 혼자 남겨졌다. 나도 따라가야 하나? 


 오빠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예정된 것이었다지만 너무 일찍 가 버렸다. 내가 오빠를 버린 것인가, 오빠가 날 버린 것인가. 오빠의 죽음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담담히 나는 내 일을 다 하고 저녁에 병원으로 가서, 오빠를 다시 확인하고 다음 절차를 밟고 왔다.      


 오늘은 회사에서 야근을 해서 집에 늦게 도착했다. 클럽으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조금 피곤했다. 하루 쉴까. 샤워를 하면서 고민을 하다가, 습관인 듯 일상인 듯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시계는 저녁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클럽에 도착하니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또 다른 나의 세계이다. 

 “하여튼 시간 하나는 죽여주게 오는군. 그게 파니의 장점 중 하나지? 준비해.”


 실장은 얼굴에 넘쳐흐르는 웃음과 말을 흘리며 지나갔다.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무대로 향했다.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느린 곡을 먼저 불렀다. 흐느적거리는 노래가 내 몸을 감쌌다. 두 곡을 더 부르자 댄스곡으로 바뀌었다. 신나는 댄스곡을 부를 때에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리듬에 맞추어서 적당하게 몸을 흔드는 사람, 마구잡이로 음악에 심취된 사람, 사냥에 나선 사람 등 그들이 하는 몸짓들이 보인다. 경쾌한 곡에는 완전 몰입이 되지 않는 게 나의 단점이다. 나와 흔드는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 두 곡을 더 부르고 내려왔다.      


 대기실에서 몇몇이 벌써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이란 참 묘한 것이다. 마시면 기분이 좋고, 그만 마셔야지 하면서도 계속 들어가니 말이다. 다음날 깨어날 때 힘들어 다신 마시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다시금 나도 모르게 알코올을 부르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분명 내 몸은 피곤으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나는 ‘빨리 마셔’라고 재촉한다. ‘흔들이’와 ‘털보’가 마시는 자리에 나도 앉았다. 앉자마자 내 잔에는 노란 액체가 가득 채워지고 나는 목마른 사람 마냥 들이켰다. ‘흔들이’는 제법 취한 모양이다. 하긴 멀쩡한 날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흔들이’는 밝고 씩씩하다. 내일 당장 잘린다고 해도 걱정 없는 얼굴로 헤헤거리며 몸을 신나게 흔들며 춤출 사람이 바로 ‘흔들이’다.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나 못지않게 그녀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내게만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쓰기 시작한 가면으로 인해 사람들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도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이라 맨얼굴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그들은 악마로 변하여 나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내가 싫다. 사람들도 싫다. 그러나 어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한 몸짓을 한다. 위선이다. 가면이다. 내가 하는 행동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받고 싶지 않다. 내가 그들의 삶을 알 수 없듯이 그들도 나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모른다. 내가 쓰는 가면은 나를 보호한다. 가면이 없으면 나는 약한 짐승이 된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치와 손가락질을 받는 비참한 짐승이 된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상처받고 싶지도 않고 상처를 받아서 비틀거리고 싶지도 않다.      

 나의 밤과 낮은 다르다. 밤이 없으면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죽고 싶은 마음을 미루어 주는 건 밤이다. 밤이 주는 적막함과 요란함, 나를 정신없이 미치게 만드는 노래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오빠의 죽음을 알려 준 사람은 형사였다. 형사는 오빠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거의 통화를 하지 않았다. 오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형사는 그런 나를 어이없어했다. 

 “원룸에 함께 사는 여자가 저보다 더 많이 알 텐데…….”

 “오빠 친구분 말로는 헤어진 지 좀 되었다고 하던데요?”

 “벌써 헤어졌데요? …….”

 “오빠는 여자관계가 복잡했습니까?”

 “아뇨. 매번 사귀던 여자들에게 차이고, 배신당했어요. 사귀었던 여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오빠랑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가요?”

 “아마… 지난 1월이 마지막이지 싶은데요. 그때 부모님 납골당에서 잠시 만났어요. 저희는 …… 살가운 남매는 아니에요.”


 형사는 잠시 나를 보다가 뭔가를 기록했다. 형사는 오빠의 사인에 대해 말해 주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죽은 다음 날 함께 일하는 오빠 친구가 발견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여러 정황으로 살펴보건대 곧 장례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르기 전 원룸을 정리했다. 다 버리고 나니 통장과 작은 수첩이 남았다. 통장에 찍힌 잔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갈색 수첩을 넘겨 보았다. 일에 대한 기록과 짧은 메모들이 전부였다. 휘리릭 넘겨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지갑에 넣었다. 다 버리기엔 … 왠지 … 미안했다.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다.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을 기억할 것은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하긴 기억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싫다. 


 나는 왜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내 과거를 잊고 싶다. 세탁이 가능하다면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지우고 싶다. 내 과거는 씻어도 씻어도 계속 씻어야 하는 때처럼 지겹게 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 독한 분이셨다. 작고 빼빼 마른 체구에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할머니가 언제 혼자되어 아버지를 키우셨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무섭고 엄한 사람이었다. 엄마에겐 매섭고 독한 시어머니였다. 독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할 수 있는 가장 독한 방법을 할머닌 다 아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 입은 욕 제조기였다. 엄마에게, 우리에게 별의별 욕을 다 했다. 할머니의 욕은 들으면 기분만 나쁜 게 아니라 수치심까지 느끼게 하는 묘한 그 무엇이 있었다. 할머니 욕을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은 엄마였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밥 할 시간이 지금이야? 이 씨불알것아. 빨리 못해? 죽으면 자는 잠. 일-어-나-라-고.”


 동네에서 할머니의 별명은 욕쟁이가 아니었다. 독사였다. 누구를 한번 물면 아주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때문에 웬만해선 할머니랑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지독하게 싫었다. 

 아버지는 더 싫었다. 할머니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의 할머니는 딴사람이 된 것처럼 조용했다. 아버지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 아버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놓고 더 많이 먹이기 위해 직접 먹여 주었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었다. 

 아버지의 침묵은 길고 차가웠다. 아버지가 우리를 부른 적이 있었던가. 조용히 와서 조용히 가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는 독자였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위하여 사셨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겐 남편 같은 존재였고, 아들이었고, 의지할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기보다 구속하고 자신 옆에 묶여 있길 원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뜻대로 곁에 있었지만 그게 애증으로 변했고, 무기력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가능한 멀리 가 있다가 부를 때 와서 하라는 대로 해 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그 독한 기운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독한 기운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낳았다. 아들을 낳으면 괜찮아질 줄 아셨다. 그러나 오빠가 태어나도 변함이 없었다. 세 명이나 되는 손주들은 눈에 차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는 할머니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늦게 일어난다고 잔소리, 밥이 질다고 잔소리, 집안이 엉망이라고 잔소리……. 엄마는 점점 약해졌다. 신경도 약해졌고, 몸도 약해졌다. 아버지는 전혀 의지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방관자였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심부름꾼이었고 하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기뻤다. 엄마가 이제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으니까.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번엔 아버지가 엄마를 괴롭혔다. 할머니가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때리기까지 했다. 할머니에게 철저하게 길들여진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때때로 멍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아버지의 폭력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지,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 원인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왜 엄마를 지켜줄 생각을 못했을까? 나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의 무시가 싫으면서도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안쓰럽고 불쌍해 보이면서도 왜 저렇게 당하고만 사는지 한심하게 보여 나도 엄마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엄마는 미쳐버렸다. 

 미친 엄마를 가진 나는 외로웠다.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가면은 생기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부잣집 아이로 보아주었다. 내가 입고 다니는 비싼 옷이 그렇게 만들었다. 내 가족은 나의 거짓말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나는 외동딸이 되어 행복했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떡볶이를 사 주고, 빵을 사 주면서 나의 존재감을 높였다. 성적도 좋았기에 그런 나를 친구들은 좋아해 주었다.      

 엄마의 정신은 수시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행복해 보였다. 정신이 돌아오면 기운이 없고 내내 쳐져 있다가 정신이 나가면 물맛난 생선처럼 팔팔했으니까. 정신이 나가면 엄마는 웃다가 화를 내다가 욕을 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이웃집에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이 맛있는 것을 먹고 있으면 서슴없이 뺏어 먹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이웃 사람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었다. 엄마랑 싸울 수가 없었으니까.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다니고 간섭을 해도 지치지 않는지 쉽게 잠을 자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했다. 그러다 또 며칠은 내리 잠만 잤다.      


 아버지는 산, 밭, 논 등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그리곤 우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떠돌아다녔다. 가끔 집에 왔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오빠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오빠는 바보처럼 친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동네 똘마니였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는 무엇일까. 아버지가 나를 자식으로 온전히 대했던 적이 있었던가.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아버지다웠다면… 현재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나는 왜 자꾸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떠돌아다니는 아버지도 싫었고, 우리들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게 모두 아버지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원망은 없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상하게 원망 대신 미움이 생겼다. 그리고 불안해졌다. 동생의 죽음, 엄마의 죽음, 다시 아버지의 죽음. 우리 집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평범한 집이 부럽다. 서로를 챙겨주는 가정을 가지고 싶었다. 아버지가 좀 더 아버지다웠다면 우리 집도 평범에 가깝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문제인가. 모르겠다. 내 삶은 애당초 평범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내 주변에 누가 있는가. 아무도 없다. 친척들과의 왕래는 처음부터 없었기에 누가 나의 사촌이고 삼촌들이고 친척들인지 모른다. 시골에 가면 내 식구들이 다 있다. 산에서 나를 맞이한다. 나만 바라보는 그들이 나는 싫다. 그들의 죽음이 나를 비참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나 역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낮에는 일에, 밤에는 노래에 미쳐 살아야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죽기 싫어서 사는지, 죽을 까봐 미친 듯이 사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과 섞이는 관계가 힘들다.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직원들이 내게 마음을 온전히 열고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들은 나를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항상 직원들보다 늦게 퇴근을 하니까. 그들은 퇴근하여 갈 곳이 있다. 애인도 만나야 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약속이 없다. 실장이나 사장은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나를 좋아한다. 겉으론 싹싹하고 충성스럽게 보이니까.      

 오늘은 클럽에 가지 않는 날이다. 클럽과의 계약은 일주일에 두 번이다. 누군가 펑크를 내게 되면 대신 채워주기도 한다. 


 10시가 조금 넘어서고 있다. 모두 퇴근을 하고 나만 남았다. 집으로 가야 하는 이런 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진다. 클럽에 가서 술이나 진탕 마실까. 취하지 않고 잠을 잔 적이 있었던가. 내게 집이라는 게 어울리기는 한 것일까. 이 집은 온전히 집 구실을 하고는 있는가. 가끔씩 자고 가는 그놈과의 공간일 뿐일까. 내게 있어서 그놈은 무슨 존재고 어떤 의미일까. 나는 왜 그놈을 가끔 용납하는 것일까. 그놈은 내 스트레스 상대인가.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바보 같은 그놈,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기에 지금껏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놈은 나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낮과 밤이 다른 나를 알고 있을까. 

 5년 동안 만나면서 그가 나에게 뭔가를 요구한 적이 몇 번이었나. 서로 알고 지낸 지 1년째 되었을 때가 고비였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따라 주지 않는 나를 못 견뎌했다. 그놈 친구들을 만나 주지 않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를 만난다고 해서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냥 너를 보고, 너를 만나는 거야. 그 이상은 나에게 요구하지 마.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려고 애쓰지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마. 나는 너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도 없고, 알게 하고 싶지도 않아.”

 “너를 좋아해. 모르겠어? … 좋아한다고.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너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또, 알고 싶은 거라고. 모르겠어?”

 자신 있게 말하는 그놈의 말이 웃겼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흥~ 웃기고 있네. 그건 니 착각이야. 너는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하는 척할 수는 있겠지.”

 냉랭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나와는 달리, 그놈은 그날따라 흥분한 상태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떤지 말을 해봐. 왜 말도 해 주지 않는 건데.”

 “…….”

 “… 우리 그만 만나자. … 솔직히 말해서 너를 만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그러나 나랑 사귀면서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면 나는 싫어.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이제 그만하자.”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예상과는 달리 전화도 어떠한 애원도 없었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웠고, 한편으론 조금 아쉬웠다. 여태까지 만난 남자들 중에서 나를 그나마 편하게 해 주었기에…….     

 

 다른 남자들은? 자신들은 모르겠지.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 약간은 불편하면서 행복한 바이러스가 꿈틀거린다. 서로에게 잘해주고 잘 보이기 위해 온갖 행동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그 사람도 자꾸만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다. 증명해 보여야 했다. 내 가진 것을 다 보여주고 다 주었다. 내 사랑을 확인한 그 사람은 말했다.

 “우린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잠시 착각한 모양이야. 더 좋은 사람 만나.”


 내 것을 보여 주지 말아야 했다. 내가 가진 것은 고작 내 몸뚱이뿐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 사람에게 내가 보여 준 것은 무엇이었나? 내 가난과 추악한 과거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가면을 벗어버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달이 조금 지났을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그놈이었다. 받지 않았다. 몇 번 하더니 문자가 왔다. ‘신촌에 있는 블루스야. 좀 보자. 올 때까지 기다릴게.’ 내가 회사에 늦게까지 있다는 걸 알고 보낸 문자 같았다. 1시간을 더 기다리게 하고 갔다. 조금 취해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가움이 일었다. 그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내 감정을 서둘러 수습했다. 

 밝으면서 산뜻한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그의 옷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조용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앉는 나를 보더니 빈 잔을 내게 내밀었다. 조용히 마셨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셨다. 카페에 흐르는 음악이 우리의 침묵을 묵묵히 들어주는 듯했다. 나도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냐.”

 “…….”

 “그래, …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 취하는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일어날게.”

 그러면서 나는 내게 남은 술잔을 들어 모두 마셨다. 잔을 내려놓자 술에 취한 그놈은 애원인 듯 체념인 듯한 말을 했다.

 “정아야, … 나 … 괜찮지 않아. 네 주위를 싸고 있는 그 무엇이 날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그렇다 치고, … 우리 그냥 예전처럼 보자. 너한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게.”


 다시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보통의 이별식처럼 한 번 만나고 갈 생각이었다. 헤어졌다고 금방 끝나는 건 아닌 것처럼. 


 다시 술을 마셨다.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날 둘 다 엄청 마셨다. 집에 어떻게 온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그가 내 옆에 누워 있었다. 


 그날, 그가 해주는 밥과 찌개를 먹었다. 맛있었다. 가슴에서 뭔가가 자꾸 차올라왔다. 그런 내가 낯설었다. 마음을 잡아야 했다. 나는 그 누구도 좋아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토요일 저녁이 되면 시장을 봐 오는 그를 허락했다. 매주는 아니었지만 그가 내 곁에 있으면 이상한 안정감이 찾 왔다. 그게 때때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느닷없이 닥치는 소식 중에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빠의 자살 소식도 불쑥 솟아오른 비포장도로의 뾰족한 돌멩이처럼 덜컹하고 다가와 내게 상처를 남겼다. 수면제의 과다 복용으로 자취방에 죽어 있는 걸 이틀 만에 발견하였다. 자살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오빠와 함께 일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함께 살던 여자와 헤어진 이후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한다. 


 화장을 하고, 선산에 뿌렸다. 바보같이 간 오빠가 미웠다. 그까짓 여자가 뭔데.      


 오빠는 어릴 적부터 항상 누군가의 종이 었다. 헌신처럼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역할이 오빠의 몫인 양 그렇게 했다.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기본이었고,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다 했다. 그런데 오빠가 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누군가를 때리고 못되게 구는 것이었다. 주인처럼 섬기는 오빠 친구가 오빠에게 누군가를 지목하면서 “저놈을 두들겨 패 주고 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오빠는 평소와는 달리 꼼짝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너 지금 내 말 안 들려?” 그날 오빠가 흠씬 두들겨 맞고 왔다.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오빠를 용납할 수 없다며 몇 번 더 실험을 했지만 결국 오빠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오빠는 미련스러운 바보였다.  바보처럼 하라는 대로 다 해주는 충실한 종이 었지만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착한 바보였다. 멍한 머리 때문인지 순한 성격 때문인지 오빠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항상 오빠의 짝사랑으로 끝났다. 말도 붙이지 못했다. 오빠랑 사귀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용만 했다. 항상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러고 사는 오빠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남매였지만 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켜보는 식이었다. 


 오빠의 죽음은 내게 별 의미가 없는 듯했다. 슬프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우울이 나를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과거로 가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일을 하다 멍하게 멈추어 있는 날들이 생겼다. 지하철을 타면 내가 내릴 곳을 순간 잊어버리기도 했다. 나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클럽에도 못 간다고 얘기를 하고 나니 잠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문득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두룩하니 있었다. 몇 통은 회사였고, 나머지는 그놈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전화가 왔지?’ 의아하여 휴대폰에 있는 날짜를 보니 벌써 이틀이나 지나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많이 잔 거지? 아프진 않는데…’ 배가 고팠다. 냉장고 문을 열어도 먹을 게 없었다. 나는 그놈에게 전화를 하여 먹을거리를 사 오라고 했다. 떡볶이, 순대, 튀김 등 한 묶음을 들고 나타났다. 고추장으로 버무려진 빨간 떡볶이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몇 개 먹고 나니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왜? 맛이 없어? 조금만 더 먹어.”

 살뜰하게 챙기는 그의 말에 평소와 달리 피식 웃음이 났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뭐기에 저럴까. 그의 행동이 순간 오빠의 행동과 겹쳐졌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오빠.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내 모습에 당황했다. 그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내 울음은 통곡에 가까웠다. 얼마나 울었을까. 나도 모르게 오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오빠가 죽었어. 이제 내 가족은 나뿐이야. … 엄마가 죽을 때도 아버지가 죽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 이번엔 이상하게 힘드네. 내 머리는 괜찮은데 내 몸은 그렇지 않은가 봐.”

 그는 말이 없었다. 그냥 나를 안아주기만 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제 내가 그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생각났다. 나는 왜 그랬을까. 


 앞으로 그는 어떤 식으로 나올까. 다른 남자들처럼 조용히 내 곁을 떠날까? 아니면 헤어지자고 하겠지. 뭐 이러나저러나 상관은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는 일부러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나보다 그가 먼저 연락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휴대폰을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며칠, 그에게서 저녁을 먹자는 문자가 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음을 잡고 또 잡았다. ‘그래, 그가 헤어지자고 해도 놀라지 말자. 어쩌면 예고된 상황인 거야. 그래.’ 이런저런 생각으로 밥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어 갈 때쯤 그는 내게 물었다. 

 “휴가가 다 끝나 가는데 그냥 집에만 있어도 괜찮겠어?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그의 질문에 멍하니 보았다. 그런 내게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우리 집에 대해 다 들었는데 괜찮아?”

 그는 씩 웃었다. 

 “우리 집도 별 볼 일 없어.”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휴가를 끝내고 회사를 나갔지만 모든 게 심드렁하니 의욕이 없었다. 클럽에서 부르는 노래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래가 끝날 즈음엔 약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실장은 그런 내게 잔소리를 해 댔다. 

 “어이 파니, 요즘 왜 그래? 잘리고 싶지 않으면 신경 써-. 노래에 쏠(soul)이 없잖아.”    

  

 이런 나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애당초 없었다. 그냥 남들 못지않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의욕이 없진 않았는데….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입맛도 없었다. 2주일에 3킬로나 빠졌다. 편집부 직원들은 그런 내게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인쇄소에 다녀오는 길에 병원이 보였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큰 병이라고 하면 오히려 홀가분할지도 모르니까. 크게 심호흡하고 들어갔다. 

 의사의 검진은 예상보다 길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프신 것은 아니죠?”

 “예. 그냥 기운이 없고, 의욕도 떨어지고, 자꾸 잠이 오기도 하고 그러네요.”

 의사는 최근에 다른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망설이다가 오빠의 죽음을 말했다. 의사는 뭔가를 적더니 내게 내밀었다.

 “제가 잘 아는 의사입니다. 상담을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의사가 내민 소견서를 들고 병원을 나왔다. ‘내게도 병이 찾아온 건가. 엄마를 미치게 하고 오빠를 죽음으로 내민 병이 유전인가. 정신질환 역시 유전될 수 있는 확률은 있으니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예약하고 시간 맞춰 갔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하고 그들의 표정 역시 달랐다. 병원을 찾는 게 나만이 아니구나. 안심이 되면서 병원을 들어올 때와는 달리 차분해졌다. 인생 별거 아니듯, 병도 별거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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