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서(Hidden Figures)를 보고
무리한 일정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몸에 무리를 주게 된다. 결과로 감기가 왔다. 콧물과 머리가 띵하여 책을 읽기 쉽지 않아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오래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미뤄 두었던 영화를 클릭했다.
‘히든 피겨스’.
시작부터 세 명의 주인공이 딱 등장했다. 그들이 내뿜는 포스가 강했다. 그러나 강렬한 포스와 상관없이 그녀들은 백인과의 차별, 성에 대한 차별을 겪고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했다. 불공평한 사회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산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어릴 적부터 수학천재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세 명의 아이를 엄마 도움으로 혼자 키우고 있는 케서린, 공부를 더 하려고 하는 메리에게 화를 내는 남편, 일을 어마무시하게 시키면서 승진은 해 주지 않는 회사에 불만이 있지만 IBM이 들어왔다는 말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는 도로시.
이 영화의 압권은 캐서린이 많은 서류를 들고 비를 쫄딱 맞아 가면서 800미터 거리의 화장실에 가는 장면이 아닐까. 하이힐을 신고, 서류 뭉치를 들고 할 수 있는 속력으로 그 먼 거리를 왕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캐서린의 자리 비움으로 인해 화가 난 상사가 그녀에게 도대체 어딜 다녀오느냐고 묻자 비에 젖은 그녀는 말한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커피포트를 써야 하고,
800미터에 있는 유색인종 화장실로 가야 하고,
진주 목걸이를 착용해야 하는 규정을.
이로 인해 상사는 화장실에 붙은 유색인종이라는 푯말을 부숴버린다.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스는 말 그대로 천재이다. 천재의 범주를 평범한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는 없다. 그녀의 계산력은 와우라는 말만 나올 뿐이다. 나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은 그냥 쭈그려 있어야 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도로시와 메리는 좀 다르게 보였다. 도로시는 변화하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들까지 이끌어 가면서 함께 하는 리더십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메리는 상사의 격려로 재판을 통해 백인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나사의 기술자로 우뚝 선다. 처음엔 화를 내던 남편도 그녀를 지지해 준다.
그녀들의 성공은 단지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 흑인 여성의 성공이고, 인간의 승리이다. 그녀들이 자리를 지킴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나는 뭐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내 노력은 뭔가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노력이 과연 최선이었나, 열심히 했나, 묻게 된다.
나를 닥달하면 저 밑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할까.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보고 나니 자꾸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도 천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