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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Nov 04. 2021

내 이름

나는 정상인가 정상이인가. 

  학교에 다닐 때 내 이름을 말하면 모두 “정상이? 비정상이 아니고?” 하는 장난을 많이 쳤다. 친구들은 가끔 “야, 니는 정상이 아니야. 비정상이 맞아.” 하는 말도 자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어릴 때는 내 이름이 싫었다. 우선 여성스러운 느낌이 싫었고 이름을 말할 때 모두 ‘이’를 ‘희’로 알아듣기 때문에 ‘이’를 다시 말해야 하는 게 귀찮았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 내가 좋아하는 이름은 중성적인 이름이다. 들으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힘든 이름이 좋다. 지오, 민수, 호영 등의 이름은 성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나도 이런 이름이 갖고 싶었다. 


 내 이름은 삼촌이 지어 주셨다. 나라 정(鄭)에 상서로울 상(祥) 저 이(伊)다. 나라에 좋은 일을 알리는(전달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 주셨다. 애들 키우면서 뒤늦게 국문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고 할 때 삼촌이 좋아하셨다. 이름의 뜻대로 가고 있다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다. 


 초등학교부터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나와 같은 이름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비슷한 이름은 딱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퀴즈대회를 했다. 정확하게 어떤 식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문제를 내고 맞추는 것이었다. 방송을 통해 문제가 나왔다. 우리는 쪽지를 적어서 자신의 이름과 함께 투표함에 넣었다. 조금 후에 당첨자를 말하면서 내 이름이 나왔다.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교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나 말고 남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정상인’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이름이랑 비슷한 사람이 남학생임에 기분이 좋았다. 내 이름과 비슷한 사람이 남학생이라는 건 내 이름이 여성적이지만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근본적으로 남자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로 불평등한 취급을 받는 여자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에 대한 불만은 초등학교 때 잠시 가졌고 이후로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지냈다. 중학교에 가니 내 이름보다 이상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내 이름은 양호한 편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가 남편을 만나면서 드디어 만났다. 남편을 아는 언니의 소개로 만났는데 처음엔 다 그렇듯 약간 어색하고 서먹했다. 서로 자기소개를 했지만 대충 들었던 것 같다. 차를 마시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갔다. 8월이라 한여름이었다. 유명하다는 밀면집으로 갔다. 밀면을 시키고 맥주를 한 병 시켰다. 서로 한 잔씩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데 남편이 다시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내 이름을 다시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막 웃었다. 나는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하여 물었다. 


 “왜 웃으세요?”

 “아, 그게. 저희 아버지랑 이름이 같아서요.”

 “예? 아버지랑 이름이 같다고요?”

 “예. 저희 아버지 성함이 정자 상자 이자입니다.”

 “…….”


  그랬다. 아버님이랑 내 이름은 같다. 한자도 ‘상’ 자만 틀리고 같다. 남편과 나는 그날 점심을 먹으며 이상한 인연에 약간 편해졌고 그렇게 자주 만나다가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나랑 데이트를 하면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애칭을 만들어 불렀다. 물론 단지 이름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는 인연이 되었다. 


 내 이름에 백 프로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직 내 이름값을 못하고 있기에 온전한 정상이 되기 위해 달리고 있다.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산 정상이나, 비정상이 아니야 가 아닌 나, 정상이가 뜨는 날까지 걷다가 뛰다가 달려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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