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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의 시간

- 체감하는 시간은 그렇게 상대적이다.

by 정상이


미용실에 가는 목적은 뭘까?

당연히 머리를 자르거나 다듬거나 파마를 하러 간다.

파마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고민의 시간이 길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용실에 오래 머무르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 내가 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시간을 선택한다. 미용실에 갔는데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으면 돌아온다. 한 명이나 금방 끝나는 경우는 조금 기다린다.

파마를 하고 미용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머리를 만 상태로 운동하러 나간다.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정도 말고 있어야 해서 강변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기다리지 않아서 좋고, 운동을 해서 좋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파마 끼는 다 풀어졌고 약간 긴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단골 미용실로 갔다. 아! 문은 닫혀 있었고, 뭔가 적혀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14일까지 쉽니다.”

왜 하필 쉬냐고.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기는 하다.

어찌해야 하나. 그냥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까, 아님 다른 곳을 가 볼까? 그렇게 동네를 걸었다. 이대로 집으로 가기엔 아쉽다. 머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새로 문을 연 곳을 선택할까, 아니면 오래된 곳을 갈까. 새로운 곳보다는 오래된 곳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우선 기술이 좋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파마에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초보보다는 숙련된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큰 길가에 있는 ‘하나 미용실’ 문을 열었다. 오래된 느낌이 있었다. 공간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미용사 혼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요즘은 거의 혼자가 많다. 내가 가는 단골도 그렇다.


미용실에는 이미 뭔가를 하고 있는 분이 있었고, 소파에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미용사는 어떤 할머니의 머리를 염색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얘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내 차례라 기다리기로 했다. 한 사람의 염색이 끝나자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일어났다. 자신도 염색을 할 것이라고 했다. 미용사는 약간 당황했다.

“어머님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원래 엄마는 머리를 자르고, 저는 염색을 하려고 했는데….”

“아니, 어머님 머리를 만질 때 염색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집에서 나올 때는 저만 하기로 했거든요.”

그렇게 여자분이 염색을 하고, 나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내가 미용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다. 두 사람의 염색에 걸린 시간은 30분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굵은 파마를 해 달라고 했다. 미용사는 익숙한 솜씨로 머리를 말았다. 내가 머리를 하고 있을 때 두 분의 손님이 더 들어왔다. 두 사람 다 머리를 자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말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보통은 운동을 하러 나가지만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다.

내가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두 분은 계속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의 얘기는 다양했다. 우선 주변 식당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식당의 김밥은 밥이 적고, 어느 식당은 밥이 많다. 어디는 4000원인데 어디는 3000원이다. 식당의 이름을 말하는데 우리 동네 식당들이어서 내가 아는 곳이었다. 그러더니 국숫집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 국숫집은 양도 많고 맛도 좋은데 지금은 아들이 물려받아 그때만큼 맛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예전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집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그분은 연세가 꽤 되었고 말하는 투는 조금 특이했다. 말이 약간 어눌하면서 느리고, 말이 입 안에서 울리는 듯했다. 자신은 지금도 아들의 월급을 관리하고 있다며 아들이 카드를 많이 쓴다고 했다. 얼마 나오냐고 묻자 100만 원 전후라고 했다. 그럼 적게 쓰는 것이라며 괜찮다고 보탰었다. 어째 아들의 돈을 아직도 관리하고 있냐고 하니 며느리가 일찍 세상을 떠서 함께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손자가 엄마에 대한 정을 모르고 커서 속이 상하다며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손자를 엄마랑 자게 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파마를 하고 휴대폰으로 영상도 보고, 글도 보는데 운동을 나가지 않으니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았다. 시작부터 계속해서 얘기하는 두 사람은 힘들지 않은지 멈출 줄 몰랐다. 뒤에 들어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음에 온다며 나갔다. 머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염색한 두 사람은 머리를 감고 마무리하고 갔다.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하던 사람은 저녁을 하러 갔다. 그러자 새로 온 사람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사람도 서로 조금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친하기보다 미용실에서 몇 번 본 사람인데 새로운 수다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중화제를 하고 다시 10분을 기다리는 게 지겨웠다. 그렇게 파마를 마무리하고 나니 6시가 되었다. 파마는 괜찮게 나왔다. 계산을 하고 나올 때까지 수다 삼매경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위대해 보였다. 연세도 꽤 되어 보였는데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았다.

“다음에 오실 때는 파란색 롤을 했다고 하시면 됩니다.”

미용사가 처음 간 나에게 한 말이다. 나를 단골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이곳이 나의 단골이 될지 어떨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미용실에서 우리 동네 식당에 대한 맛 평가부터 한 집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집에 왔는데 이상하게 그 집안의 풍경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미용실은 동네 소식통이고,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마당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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