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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출장이 힘들다.

by 정상이


처음 공식적인 출장으로 2박 3일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봤다. 지금과 많은 점이 달랐다.


우선 떠나는 내 마음이 달랐다.

예전에는 집을 비우게 되는 걱정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생겼다.

아이들이 중학생이었기에 학교에 잘 갔을지도 걱정되었고, 밥은 잘 챙겨 먹을지도 염려되었다.

실제로 작은 아들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지각을 했다.


며칠 비워도 준비할 게 많았다. 밥을 안치고, 반찬을 해 놓고, 어떻게 먹고, 어떤 것은 냉장고에 넣어야 할지 알리고, 세탁기를 언제쯤 돌리라고 말해야 했다.

집에서 하는 내 일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세탁기를 돌리지 못했다.

“아니, 왜 안 돌렸는데?”

“돌리려고 하니까 세탁기는 돌아가는데 물이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고장 난 줄 알고… 안 돌렸어.”

진짜 고장이 난 줄 알았다. 세탁기를 돌리니 멀쩡했다. 뭐지?

“잘 돌아가는데!”

“아니, 세탁기를 돌리면 물이 쫘하고 나오고 돌아가잖아. 그런데 물이 안 나오더라고.”

그랬다. 그새 세탁기가 바뀌어 세탁을 세팅하면 우선 통이 먼저 돈다. 돌면서 빨래의 양을 체크하면서 물의 높이를 맞추고 물이 나온다. 남편은 그걸 몰랐던 것이다. 한 번도 세탁기를 돌린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다시 세탁기의 사용법을 알려 주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출장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우리 식구들은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예전처럼 걱정보다 집안일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더 커졌다.

아이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해 놔도 먹지 않으니 알아서 먹으라고 한다.

잘하지도 못하는 음식을 만드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되고, 자신들이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니 서로 좋은 일이다.


출장을 가면 집안일에서 벗어나 동료들과 그동안 못 나눈 얘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차도 마시고, 수다의 시간도 길게 가진다.

어느 정도 자유를 느낀다.


그랬는데……. 지금은 출장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

우선 일이 주는 무게감이 생겼다. 그때처럼 가볍고, 쉽게 넘어가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느낌이다.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잘도 잤는데 이제는 집의 편안함이 그립다.


반면 우리 식구들은 이제 나 없이 잘한다. 모두 성인이 된 것도 있다. 이제 내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빨래도 알아서 하고, 알아서 개켜서 자기 자리로 간다.


집안일에서 벗어나는 자유보다 혼자라는 시간을 즐기는 시간으로 만들면 출장이 힘들지 않을까.

일은 일이다.

아직은 일의 소중함을 느끼며 짐을 싸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체력을 보충하고 생각을 바꾸자.

낯선 곳을 더 즐기도록 애써 보자.

더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가을이 왔으면 한다.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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