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드라마를 보며 생각해 본다.

by 정상이

요즘 새삼스레 드라마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자꾸 그 드라마를 얘기해서 궁금했다. 한 편을 맛보기 삼아 봤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세 남매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막내딸이 유독 많이 힘들어한다. 사람들이 행복한 게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이 뭔가로부터 채워져 본 적이 없기에 모든 관계가 연기이고 괴로움이다.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모든 현대인의 모습이기에 더 와닿았다.


사람을 만나면서 이리저리 재 보고, 계산하지 않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다. 낯선 이방인 구씨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계산 없이 만난다. 보통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과거를 중심으로 알려고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그냥 일하고, 그냥 먹고, 그냥 만난다.


또한 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구씨가 술을 많이 먹어도 그냥 본다.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변화는 상대방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우리는 그렇게 지켜보지 못한다.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막내딸과 구씨의 관계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같다.


삼 남매의 부모. 이들의 부모는 보통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다른 면이 있었다.


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고 일만 죽어라 했다. 엄마는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하루 세 끼의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다가, 남편이 하는 싱크 공장에 가서 커피나 미숫가루를 타서 주고, 밭일을 하면 간식을 챙겨야 했다. 드라마에서 구씨가 오기 전에는 공장일도 도와줘야 했다.

유달리 먹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다른 음식을 내 보이는 장면이 놀라웠다. 아버지는 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엄마의 표정도 다른 드라마에서처럼 밝고 편하지 않았다. 항상 찌푸린 상태였고, 다정한 모습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죽었다. 아프거나 병이 들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죽었다. 자다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엄마의 죽음은 보는 나에게도 충격이었고 쇼크였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그 누구에게나 충격이다.


엄마가 죽은 후의 집은, 집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휑하고 어색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의 자리를 느꼈다. 엄마는 집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위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엄마는 큰딸의 말처럼 과로사였다. 밥을 챙겨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고, 남편이 하는 공장에 간식이며, 밭일이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잠시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엄마가 있었기에 집안에 온기가 있었고, 모두들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하루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엄마는 자신이 힘드니 “이것은 못한다. 저것도 못한다. 나도 쉬고 싶다”라고 외쳐야 했을까.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줄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그래, 말을 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나 힘들어. 나 쉴래” 외쳐야 한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울타리이며 위안처이듯이 남편에게도 숨구멍이다. 엄마가 자식들에게 밝고 환한 표정으로 애정을 표할 수 없었던 것은 삶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여유가 생겨야 다음이 가능하다.


세상의 엄마들에게, 아버지들에게 말하고 싶다. 쉬엄쉬엄 가자고. 여유를 부리며 살자고.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치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자 말하고 싶다.


엄마의 자리가 온전하게 유지되려면,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엄마들이여, 너무 많은 걸 하지 말자.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을 정도만 하자. 나머지는 그냥 팽개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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