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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Sep 17. 2022

엄마와 시어머니

- 같으면서 다른 엄마

 

까마귀와 까치-같은 공간에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

내 엄마를 떠올려본다. 음식 솜씨 뛰어나고 흥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 아주 좋다. 다정하면서 나를 잘 이해해주는 분이다. 엄마가 주는 사랑과 애정은 항상 넘쳤고 행복했다. 

 반면 엄마는 예민하고 입이 까탈스럽고 잔병이 많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몸이 아프면 화가 많아진다. 몸이 안 좋은 상태인데 전화를 하면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에 힘이 없으며 어떠한 말을 해도 안 먹힌다. 그럴 때는 통화를 길게 하기보다 집으로 찾아가서 얼굴을 보는 게 그나마 낫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이해는 하지만 나 역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식과 며느리는 무엇이 다를까.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도 틀어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유로 웬만한 것은 덮고 넘어가고 이해하려고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고 살기도 한다. 며느리는 엄밀히 말하면 남이다. 타인과 타인끼리 만나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새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두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올케가 생겼다. 그러나 엄마가 살고 있는 곳에서 떨어져 살았기에 부모님이 아프다든지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까이 살고 있는 나랑 여동생이 해결을 했다. 그것에 불만은 없었다. 아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명절날, 엄마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아빠가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우리는 엄마 집에서 쫓겨났다. 뭔 이유가 있었다면 이해하고 납득을 했을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쫓겨났다. 나는 그렇다 치고 잘 자고 있던 남편은 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쫓아 보내는 입장에서는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다지만 쫓겨나는 사람은 그냥 집을 나온 게 아니었다. 


 아빠가 화가 난 것은 그 전날부터였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어떤 부분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날 두 올케랑 동생들은 밖에서 놀다가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빠는 애들이 어린데 언제 깰지도 모르고 하니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올케와 남동생들은 아빠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나서 다 꼴 보기 싫으니 나가라는 것이었다. 내 아버지이지만 성질이 나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위와 올케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화를 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하였지만 나나 남편이나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다음날 엄마는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나는 더 이상 엄마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빠 얼굴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엄마 집에 가야 할 때는 아빠가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집으로 왔다. 그런 생활이 꽤 길었다. 명절이고 나발이고 안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하루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대로 이런 식으로 지내야 하는가.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에 용서 못할 것이 없었다. 부모님이 내게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해도 나를 키우고 이만큼 성장하게 해 주신 게 더 컸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마음을 남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다음 명절이 되었을 때 남편이 우리 집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문제가 많은 우리 집에 가 주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자고 오지 않았다. 인사를 드리고 형제들이 다 모여 얘기를 나눈 후 금방 일어났다. 


 어릴 때의 부모님과 결혼 후의 부모님은 다르게 보였다. 어릴 때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고 물질을 주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들의 의견을 따르면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의 부모님은 이해심이 부족하고 자신들의 아집에 갇혀 있었고 어떤 때는 속이 좁은 늙은이처럼 보였다. 사위나 며느리에 대한 배려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사위와 며느리는 남이다. 남에게는 자식들에게 하듯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엄마와 올케의 갈등은 명절 음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올케는 많이 먹지 않으니 적게 하자고 하고 엄마는 음식 하기 힘들면 당일에 오라고 했다. 문제는 작은 올케는 아이들이 많으니 음식을 하는 걸 좋아했다. 둘은 이런 문제로 갈등이 생기고 큰 올케는 작은 올케를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음식을 적게 하자는 문제는 다른 부분까지 번지고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졌다. 명절에 집에 갔는데 큰올케는 입을 닫고 표정이 어두웠다. 그러고 있는 올케가 꼴 보기 싫은 엄마는 친정으로 가는 올케에게, 


 “니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앞으로 오지 마라.”라고 뱉었다. 

 그러자 올케도 냉큼 받아서 “예 알겠습니다.”했다. 


 그 길로 올케는 시댁과의 인연을 끊었다. 명절은 기본이고 생신이고 뭐고 어떤 일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화해를 할 줄 알았다. 벌써 2년이 지났다. 


 처음 두 사람의 문제를 접했을 때 든 내 생각은 그랬다. 엄마도 잘한 것은 없지만 올케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서로 한 번은 터지더라도 허심탄회하게 풀날이 오지 않을까. 


 며칠 전 추석에 집에 갔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엄마는 남동생에게 화를 냈다. 올케는 집에 오지 않는데 니는 뭐하러 처가에 가느냐는 말이었다. 남동생은 자신의 도리를 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하고 엄마는 벨도 없는 놈이라며 짜증을 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그냥 없는 사람(올케)이라고 여기고 마음을 비우라고 하니 그런 말을 하는 내게도 화를 냈다. 엄마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남동생 말대로 없는 며느리 욕을 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속은 상하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여겨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모양이었다. 

 집에 와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엄마이지만 엄마가 하는 말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데 남인 며느리는 얼마나 신경질이 날까. 올케를 두둔하고 싶지도 않고 엄마 편을 들고 싶지도 않다. 둘 다 문제는 있으니까. 어른이 먼저 마음을 비울 수도 있고 아랫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지만 둘 다 그 무엇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 관계는 지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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