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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Jan 21. 2023

쉬면서 누리는 여유

- 설날을 보내며

  오늘은 설 전날이다. 까치 까치 까치의 설날이다. 


 음식 재료를 준비하여 굽고 지지고 볶는 날이다. 시장과 마트는 며칠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오늘도 마트나 시장으로 음식 재료 중 빠진 것을 사러 다니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지금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런 여유를 부린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명절에는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바뀌면서 굳이 튀김이나 부침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기고, 형님에게 차례에 올릴 튀김을 그냥 사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니 담당이니까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에 튀김 가게에서 사게 되었다. 차례에 올려질 개수에 약간 더해서 샀다.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었다.


 부침이나 튀김을 할 재료를 사고, 손질하고, 부치거나 튀기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튀길 때 사용되는 기름은 또 고스란히 버려야 하니 그것도 난감하다. 사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례상에 올려지는 음식의 가짓수와 양은 줄어들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 추석과 설. 두 집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으며 잘 지냈는지 묻고 오후가 되면 헤어진다. 친정으로 가야 하니까. 친정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가까우니 차가 막히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내 몸이 편해지니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어떤 분의 사연을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한 번 지낸 후, 어머니는 아버지 제삿날에 식당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며 지내는 걸로 한다는 말. 와. 대단한 생각이다. 이럴 수도 있구나.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내 머리를 때렸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돌아가신 날, 다 같이 모여 추억을 나누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건 멋진 일이다.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단지 가볍고 궁금한 마음만을 가지고 만나면 되는 일이다. 일 년에 한 번이니 다들 기다려지지 않을까.  


 남편은 6남매의 막내다. 시부모님의 제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엔 서열이 한참 낮으니 제사 대신 식당에 모여 기념하자는 말은 안 먹힐 것이다. 그러나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형제자매들에게 얘기를 해 볼 생각이다. 우리 형제는 4남매이고 내가 첫째이고, 명절이나 제사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명절은 조상 대대로 모두 모여 기념하는 날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열고, 무탈하게 잘 지내자는 약속이다. 지금까지 건강하고 행복했으니 앞으로도 그러자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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