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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Jul 08. 2023

여름 휴가지에서의 질투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짜릿한 바캉스’에 대한 사연을 보내라고 한다. ‘짜릿한’이라는 말만 들어도 전기에 감전이 된 듯,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듯 찌릿하다. ‘바캉스’는 여름이다. 여름에 청춘남녀의 사랑이 많은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뜨거운 여름이고, 맨살을 맘껏 드러내고, 뜨거운 태양처럼 심장이 뜨겁게 타오르고, 뛰는 심장의 박동수로 인해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에 사랑을 했다가 가을이나 겨울이면 이별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 나에게는 짜릿한 여름날의 추억이 없는가. 내 기억을 아무리 뒤적거려 봐도 없다. 왜 없는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위를 심하게 타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특히 해수욕장에 가는 걸 싫어한다. 더운데 뭐 하러 햇볕 뜨거운 곳을 가며, 바다에 놀다가 나오면 샤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연애를 할 때에도 여름이 오면 나는 집으로 휴가를 갔다. 그게 당연했고 아무도(당시의 애인도) 그런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의 일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짜릿한’ 부분이 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일을 겪었으니까. 10년은 더 된 일이다. 


 우리 4남매는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아들 둘, 남동생은 딸 하나, 여동생은 고루 둘, 막내는 세 명을 낳았다. 우리 형제는 두 살 터울이고 결혼도 2년 정도의 주기로 했기에 아이들도 고만고만했다. 아이들은 물놀이를 좋아해서 여름이 되면 계곡이든 바닷가든 가야 했다. 이건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남매는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게 여러모로 편리했다. 


 매번 물놀이하기 편한 계곡으로 갔는데 이번엔 바닷가를 가자는 의견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남해에 있는 바닷가로 펜션을 예약하고 대식구가 휴가를 떠났다. 16명은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바닷가로 휴가를 간 건 내 생애 아주 오랜만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할머니랑 해수욕장에 가서 논 기억이 있다. 뜨거운 모래에 발가락을 넣고, 파도타기 한다고 뛰다가 짠 바닷물을 마신 기억이 있다. 그보다 배를 타고 가다가 심하게 한 멀미. 할머니랑 나랑은 멀미 대장이었기에 힘든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여름 바닷가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바다는 좋아하지만 바닷가의 물놀이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귀찮음에 있다. 바다에서 노는 건 좋지만 짠물이기에 다시 샤워를 하고 씻어내야 하는 일은, 그것도 많은 사람들 틈에서 차례를 기다려 가며 한다는 건 휴~ 어려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게을러 이것저것 귀찮았던 모양이다. 허긴 지금도 여름 바닷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도 버겁고, 그 속에서 짠물을 먹어가며 물놀이하는 것도 그다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대식구가 여름휴가를 갔다. 아이들이 많아서 안전에 특히 신경을 써야 했다. 먹을 것도 고기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준비했다. 여동생은 자신의 시댁 조카까지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려 놀았다. 몇 명이 음식을 준비하면, 몇 명은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안전을 지키는 쪽으로 했다. 여동생이 데리고 온 시댁 조카는 먹성이 대단했다. 그렇게 많이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처음엔 놀라움으로 보고, 다음엔 우리 아이들도 저만큼 많이 먹었으면 하고 바라고, 나중엔 웃음이 났다. 역시 많이 먹어야 쑥쑥 자란다는 말은 진리였다. 물론 유전자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물에서 신나게 놀았다. 해가 지면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고기를 구우면 입으로 가기 바빴다. 아이들이 방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큰 올케는 조카를 낳은 후 둘째를 가지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자연유산이 되고 있었다. 막내는 둘 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많이 낳으려고 하고 있었다. 셋째가 아직 어려서 품 안에 안고 있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아이를 안아 보고 있었지만 큰올케는 아니었다. 조카를 신기하고 사랑스럽게 보기는 하지만 안아 보지는 않았다. 조심스러워서 그런가? 


 그렇게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올케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큰 조카를 낳은 지 10년 만에 둘째를 가진 것이다. 우리는 축하한다고 했다. 그때 어른들은 말했다. 아마 휴가에서 큰올케가 작은 올케의 아이를 보고 질투를 느낀 모양이라고. 질투로 인해 둘째가 생긴 것 같다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상상 임신이 있듯이 질투로 인해 사랑의 열매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임신을 쉽게 하는 사람은 모른다. 임신을 원하지만 잘되지 않는 그 힘듦과 아픔을. 큰올케의 질투는 둘째를 가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짜릿한 바캉스’는 보통 남녀의 사랑이 많지만 내게 짜릿한 바캉스는 그때 그 바닷가의 휴가이다. 그때 생긴 조카는 아마 여름을 좋아하지 않을까?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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