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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Jul 02. 2023

물앵두와 시아버지

 

  

인터넷에서 가져 온 이미지. 탐스런 열매가 맛나 보인다.

 에세이를 읽는데 물앵두 이야기가 나왔다. 

 

 물앵두. 빨간 열매에 약간 신맛과 단맛을 가진 물앵두는 잠시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과일이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물앵두, 살구, 산딸기, 복숭아 등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과 야채를 먹고 자랐다. 그래서 그 맛을 잘 안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먹어 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하하하. 


 결혼을 하고, 큰 애를 가진 어느 주말, 시댁에 갔었다.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하다가 5개월쯤 되니 살만해졌다. 남편은 6남매의 막내라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결혼할 당시 연로하셨다. 조용하면서 인자하신 분들이며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는 게 없었다. 


 점심을 먹다가 물앵두 얘기가 나왔다. 왜 그 얘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물앵두 얘기가 나오니 갑자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먹고 싶다는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조금 있으니 아버님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워낙 부지런하신 분이라 어디 가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버님은 뭔가를 잔뜩 들고 오셨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가지채로 잘라서 한 다발이었다.


 물앵두였다. 물앵두는 물을 머금어 탱글탱글하면서 싱싱해 보였다. 며느리를 위해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 잘라 오신 것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물앵두에 환호성을 질렀다. 가지를 잡고 신나게 따 먹었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에게 드셔 보라는 말도 잊은 채 물앵두 삼매경에 빠져 먹었다. 한참을 먹다 보니 나 혼자 먹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내가 한 행동을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먹는 것에 욕심부리지 않는데…….  그제야 두 분에게 권하니 괜찮다며 많이 먹어라고 하셨다. 그날 먹은 물앵두는 진짜 꿀맛이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삼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내 이름을 말하니 남편은 깜짝 놀랐다. 왜요?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을 웃기만 한다.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저희 아버지 성함이랑 같네요. 예? 그렇다. 아버님도 ‘정상이’이다. 나랑 이름이 같다. 여태까지 한 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했다. 남편은 연애할 때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애칭으로 불렀다. 


 아버님은 작은 체구를 가졌고, 어머님은 크신 편이다. 시댁 식구들은 어머님의 유전자를 닮아 모두 큰 편이다. 옷을 사면 어머님은 가장 큰 사이즈를, 아버님은 가장 작은 사이즈를 사야 한다. 아버님은 말이 없으시면서 부지런하시고 작은 행동으로 장난을 잘 치신다. 손자랑 어떻게 하면 잘 노는지  모르지만 장난을 치고 싶으셔서 큰 애의 옷에 작은 종이들을 넣고 아이는 귀찮다며 빼내는 놀이를 많이 했다. 아이의 등 뒤로 종이를 넣으면 뭔가 걸려서 꺼내면, 아버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넣고 시치미를 뗀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가 아버님과 아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일 때문에 큰 애를 시댁에 잠시 맡긴 적이 있었다. 몇 시간 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볼일을 보고 시댁에 갔을 때 아버님과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있으니 아버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이는 먼지와 땀으로 꼬질꼬질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아이가 가자고 하는 대로 손을 잡고 따라다니신 것이다. 큰애는 워낙 활동적이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버님은 약간 지쳐 보였다. 할아버지랑 어디를 가서 뭘 보고 뭘 했는지 자랑을 했다. 아이에겐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었지만 아버님은 아니었다. 죄송하고 감사했다.

 큰 애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친정에서는 첫 손주이고, 시댁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라 그저 예쁘다고 사랑해 주셨다. 


 요즘은 물앵두를 보기 쉽지 않다. 시장에 가끔 물앵두가 나오지만 선뜻 사 먹지 못한다. 그때 아버님이 따오신 물앵두 맛이 아닐 건 분명하다. 한 번 먹었는데 왜 아직도 그 맛과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입덧으로 힘든 시기에 먹었던 맛이라 그런가, 아니면 며느리를 위한 아버님의 애정을 받은 행복감 때문인가. 그게 뭐가 되었던 지금도 물앵두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고 입에 침이 고인다. 감사하고 행복한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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