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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Sep 15. 2023

거꾸로 걷는다.

- 돌아서기 아쉬워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온다. 

 어반자카파의 ‘거꾸로 걷는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뒤돌아서지 못하고 거꾸로 걸으며 상대방을 보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그 사람과 사랑을 하고, 헤어지면서 아쉬워 거꾸로 걸으며 잊지 못했던 적이 있었던가. 


 고등학교 때 남녀공학이어서 당시에 사귀는 친구나 선배들이 꽤 있었다. 

 학교에서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내 눈에 들어오는 선배가  있었다. 키가 크고 귀엽게 생긴 선도부 선배였다. 

학교에 가면 볼 수 있는 선배가 있어서 좋았다. 

짝사랑이었지만 그걸로 만족했다. 

아마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나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갔다. 

졸업과 동시에 그 선배를 좋아했던 내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2학기가 될 즈음 학교 축제의 일환으로 우리 과에서 ‘형사모의재판’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참여를 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아주 소소했다. 

대사도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연습에 참여했다.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선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멋진 구레나룻을 가지고 있었다. 

거뭇하게 자란 수염도 멋져 보였다. 

그렇게 그 선배는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함께 연습을 하고,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 잔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선배와 친해지면서 장난도 많이 쳤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배에 대해 물었다. 

선배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단다. 

우리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있-단-다. 

내 마음은 쓰라렸다. 

선배에 대한 내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선배는 분명 나를 편한 후배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나 혼자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나. 

선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할까도 생각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일게 뻔한데 고백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게 고민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마지막 소망을 품었다. 

‘축제 마지막날 뒤풀이에서 선배랑 브루스를 한 곡 추고 깨끗하게 접자.’ 

그러나 나는 선배와 마지막 춤을 추지 못했다. 

선배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쓰린 마음을 안고 집으로 왔다.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에서 집까지 비를 맞으며 걸었다.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비가 내 눈물을 감춰 주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내 짝사랑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끔 선배에 대한 소식들을 들었다. 

정확한 정보는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들이었다.


지금도 가끔 궁금하기는 하다. 

어딘가에서 멋진 모습으로 지낼 테지만 아주 우연히라도 만나보고 싶다. 


노래 가사처럼 헤어짐이 아쉬워 거꾸로 걸어 본 적은 없지만,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참 좋은 것이다. 

그때의 나는 거울을 보며 얼굴에 뭐가 뭍은 것은 없는지, 옷은 멀쩡한지, 확인하면서 미소도 지어보곤 했다. 그때의 나는 풋풋했고, 귀여웠다. 

아, 푸른 나의 20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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