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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 Apr 14. 2023

이야기의 시작, 마니또 -1-

내가 그녀의 마니또가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로 와서 인연이 되었다

마니또. 제비 뽑기를 통해 누군가의 이름을 뽑으면, 한동안 그 사람을 비밀리에 물심양면으로 챙겨주는 놀이를 뜻하죠. 동시에 저희 부부에게 매우 인상 깊은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이 매거진에 담길 모든 이야기가 바로 '마니또'로부터 출발하거든요.  


저와 아내는 대학교 입학 직후 같은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었습니다. 당시 동아리에서는 회원들 간의 친분을 쌓게 하려고 여러 이벤트를 했었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마니또'였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였던 5월 초순경이었죠. 저도 동아리 회원으로서 마니또 이벤트에 참여를 했었는데, 그때 제가 뽑은 사람이 바로 아내였습니다. 그 당시의 제게 이건 기회였습니다. 때마침 제가 아내에게 조금씩 호감이 생겼었는데, 마니또를 명분 삼아 아내에게 정당한 호의를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내에 대한 제 마니또 활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처음 표현했던 호의는 '동아리방에 아내 몰래 선물 놓고 가기'였습니다. 그 당시 동아리에서 마니또 이벤트를 하면 대부분의 회원들이 자신이 뽑은 친구가 없는 틈을 노려 동아리방에 이런저런 선물을 놓고는 마니또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고 갔었는데요, 저도 같은 방식으로 아내를 위한 선물이었던 '제과점 롤케이크'를 놓고 갔었습니다. 대개 편의점에서 몇 천 원 하는 과자나 음료 정도 놓고 가던 것에 비해 제 선물은 비용이 꽤 많이 들었던 셈이죠. 나중에 선물을 확인한 아내는 '고작 마니또 하나 하는데 이만큼이나 되는 선물을 놓고 간다고?'라는 생각에 많이 당황했었다네요.


하지만 이토록 당황스러운 저의 마니또 활동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당시 스마트폰으로는 문자를 보낼 때 발신자의 번호를 지운 채 수신자에게 보낼 수 있었는데요, 그 점을 이용해서 아내에게 마니또로서 응원하는 문자를 정성스럽게 써서 여러 차례 보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제게 아내는 개인 카톡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요, 한 번은 마니또 활동 기간 중 아내가 카톡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편의점에서 파는 복숭아맛 푸딩 먹고 싶다


그 톡을 받은 저는 아내 몰래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말한 그 푸딩을 샀죠. 그리고는 동아리방에 아내 몰래 놓고 갔습니다. 사실 보통의 촉으로는 이 정도 일이 벌어졌으면 누가 내 마니또인지 다 알겠습니다만, 다행히 저는 그때까지 괜찮았습니다. 아내는 제가 마니또인걸 몰랐거든요. 그저 '내 마니또는 누구길래 이렇게 내 취향을 잘 알지?' 정도로만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죠. 저의 노골적인 마니또 활동 때문에 저는 아내에게 마니또인걸 들켜버리고 맙니다. 마니또 활동 종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내는 또 저한테 카톡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교내 카페에서 파는 딸기스무디 너무 맛있던데 그거 먹고 싶다


그 톡을 본 저는 또 저번처럼 교내 카페를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문했죠.


딸기스무디 한 개 주세요


주문한 딸기스무디 한 개가 나오자마자 저는 그걸 냉큼 받아 들고 아내가 있던 동아리방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동아리방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영아 이거 네 마니또가 전해달랬어!


아내와 다른 동아리 회원들이 다같이 있던 상황에서 저는 제가 누구 마니또인지를 대놓고 실토했던 셈이죠. 그런데 그걸 본 아내와 다른 동아리 회원들은 상반된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얘가 내 마니또구나


하지만 다른 동아리 회원들은 이렇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쟤가 주영이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대망의 마니또 발표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아내가 자기 마니또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듯한 언행을 보이길래 속으로 '좋아 그동안 자연스러웠어'라고 착각을 했었죠.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가 아내의 마니또였던게 밝혀진 뒤에, 아내는 너인 거 다 알고 있었다면서 너 바보 아니냐고 놀려댔죠. 게다가 저는 제 마니또가 실수로 자기가 마니또인걸 노출한 순간에 그걸 알아채지 못했던 탓에 더 바보 취급을 당했었습니다. 아내와 다른 동아리 회원들 앞에서 많이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죠.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마니또를 뽑는데,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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