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관계가 진전될 줄이야
마니또를 다시 뽑을 때 아내도 바구니에 손을 넣어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냥 집히는대로 뽑은 게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제비를 휘휘 젓다가 마침내 하나가 손에 집혀서 그걸 뽑으려 했죠. 그런데 그걸 뽑으려던 찰나, 바로 옆에 있던 제비가 아내에 손에 걸렸습니다. 걸린 느낌을 받은 아내는 원래 있던 제비를 놓고 옆에 있던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비를 펼쳐 누구의 이름이 적혀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잘 챙겨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내는 저에 대한 첫 마니또 활동을 실행했습니다. 제가 동아리방에 없던 틈에 도넛가게에서 도넛 한박스를 사들고서 동아리방에 놓고 갔던 것이죠.
여기서 아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는데요, 바로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저 박스 위에 '♡동영♡'이라고 썼던 것입니다. 아내가 이걸 놓으려고 동아리방에 갔을 때 다른 동아리 회원 네 명이 같이 있었는데요, 아내가 이걸 놓고 나간 뒤에 몰래 저렇게 적어놓고 마치 아내가 적은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죠.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제가 제 SNS에 이 사진과 함께 마니또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 게시물을 올리고 난 뒤였습니다. 당시 아내는 사진 속의 자기가 적지도 않은 글씨를 보자마자 너무 다급한 나머지 육성으로 '나 아니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마니또로서 저한테 격려문자를 보낼 때 실수로 발신번호를 지우지 않은 채 보냈던 것이죠. 저도 문자를 받자마자 '아 얘가 내 마니또구나'라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누가봐도 마니또로서 보내는 문자인 게 티가 났거든요. 정체가 대번에 들통난 아내는 다시 문자를 보내 저한테 사실을 실토했고, 저는 답장을 보내며 웃음을 터뜨렸었죠.
그렇게 서로의 마니또 활동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의 인연은 이제 막 시작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