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일, 그 갈림길에서 나는...
군 복무 중 근무를 가기 위해 생활관 밖을 나서니 오늘따라 차가운 밤의 공기가 나를 감쌌다. 촉촉하면서 과거의 향수를 담고 있는 듯한 이 밤공기를 나는 좋아한다. 조용하고 드넓은 기지에는 외로운 가로등불만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수많은 빛들은 군수 화물들을 옮기기 위해 설치된, 곧 뻗은 레일 위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열차 내지 수레도 아니지만 그 레일을 따라 어느 외딴 게이트로 향하고 있었다.
전역이 거의 남지 않는 시점에 활주로 끝에 있는 그 외딴 게이트로 근무를 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4~5시간을 보내는 근무지이다 보니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주로 불리곤 한다. 거의 이~일병이 가는 근무지이기에 나는 1년 만에 이곳을 오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오랜만에 온 만큼 주변 풍경을 열심히 눈으로 담으려 했다. 그 중 가장 나의 눈에 띄었던 건 사용하지 않은지 꽤 된 듯한 레일이었다.
레일은 굉장히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궁금증이 생겨 나의 옆에서 함께 멍을 때리고 있는 미군에게 물었다. 저 레일은 왜 사용하지 않냐고 말이다. 자기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마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차가 발전해서 굳이 레일 위로 짐을 옮길 필요가 없어졌기에 그런 게 아니겠냐고 나에게 되묻는 듯했다. 너 똑똑하네라고 쉬운 영어를 내뱉으며 멋쩍은 웃음으로 대화를 끝냈다.
이 회사에 들어갈지, 저 회사에 들어갈지. 좋아하는 일을 할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할지. 취미로만 남겨야 할지, 일로서 본격적으로 해야 할지. 그 갈림길 위에 서있는 우리는 결국 철로라는 정해진 길을 달리는 기차가 되기를 사회에게, 어른들에게 강요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탈선을 해 정해진 갈림길이 가리키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방향을 도저히 잡기 힘들어 길을 잘못 드는 일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저 기차들과는 다르게 더 넓은 지도가 나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듯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을 때가 돼서야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달려온 타임라인을 말이다. 들여다보니 효율적인 길은 애진작에 버려놓은 채로 돌고 돌아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한 순간도, 그리고 돌아본 지금조차도 후회스러웠던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일로 하는 사람들의 타임라인이 궁금했다. 그렇게 김승열님, 니키님, 테디님 세 분의 타임라인을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러니 더욱이 자동차가 되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아무리 목적지에 도달한 자동차라고 해서 기차를 비웃을 수 있을까. 그들은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각자의 역할, 삶에 따라 달리고 살아가고 있는데 비웃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내가 앞으로도 자동차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효율적인 기차에 순간 혹해서 기차로 역할을 바꿀 수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탈선을 할 수도 있겠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자동차와 기차,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