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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우 Dec 16. 2020

아낌없이 받는 나무

엄마의 트리는 그러했다

'띠링-' 아침 댓바람부터 문자가 왔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스마트폰을 움켜쥐었다. 억지 요가 자세로 머리 위 폰을 가져오다 하마터면 쥐가 날 뻔했다. 게슴츠레 화면을 보니 엄마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츄리" 


첨부된 이미지는 그야말로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뒤덮여 초록빛이 실종된 트리였다. 과대 포장이랄까, 아낌없이 주기보다는 받은 나무랄까.


엄마가 아침부터 보낸 문자. 간결하다

엄마의 사진은 흔들려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을 아들에게 오롯이 전해야겠다는 급한 마음 때문이겠지.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지만 귀여웠다.


내가 문자를 확인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엄마는 서툰 '검지 타법'으로 문자를 이어갔다.


"아들 눈이와"

"아빠와여자 애기가 놀이터에서 눈맛고있어"

"너와딸도 나중에 이런 모습 일거란 상상 ㅎ ㅎ"

"일었더니 갑자기 신선 된것같아 경치가 장난야"

"보여주고 싶다"


오타투성이 문자와 함께 엄마는 초점이 나간 사진 하나를 더 보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빠와 딸이 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엄마는 그들에게서 미래의 나를 본 모양이다. 내가 보고 싶어졌던 걸까. 괜히 첫눈 소식을 전하는 척 내 연락을 기대했을까.


설국 속 아빠와 딸

문득 서글펐다. 어떤 가정집 트리보다 화려할 것만 같은 트리가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나와 겹쳐보였다. 부모님이 평생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면 나는 저 트리처럼 '받기만 한 나무'였다. 그들의 대가 없는 사랑으로 잘 포장된 지금의 내가, 올곧게 뻗은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살기 바쁘다며 전화 한 통 자주 하지 않는 매정한 아들에게, 쉬이 연락도 못 하고 망설이다 문자를 보냈을 어머니.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통화음이 채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대답했다.


"응, 아들~ 웬일이야?"

"엄마, 트리 봤어요. 저게 뭐예요?"

"아, 아까 아버지랑~..."


엄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쾌활했다. 부부가 합심해 그럴듯한 트리 하나를 만들어냈다는 충족감 때문일까, 올겨울 첫 설국을 감상하며 퍼진 마음 속 여운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전화 때문인 걸까.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기뻤다. 엄마의 음성을 더 많이 듣고 싶었다. 기억에 새기고 싶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이파리도, 나뭇가지도, 열매도, 모든 것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사이 풍성한 나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내가 받은 것들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다. '엄마'라는 고목이 약해져 버린 밑동을 오래오래 버텨낼 수 있도록, 그가 만든 저 오색찬란한 트리처럼, 아낌없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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