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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plash Oct 08. 2017

강해지려고만 했던 나의 잘못된 마음가짐


망각이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예전 좋아했던 영화 혹은 만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기억 못 하게 해, 나중에 문득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을 때 마치 처음 보는 듯한 흥분을 안겨준다.




<신 암행어사>, 10년도 훨씬 전에 즐겨 읽고 우연히 다시 최근에 읽게 되었는데 여전히 재밌다. 만화책은 왠지 철저히 오락에만 전념하고 아무래도 독자의 연령층이 대부분 낮다 보니 만화책은 뭔가 책으로는 쳐주지 않는 분위기가 사실 아직 남아있지만, 나는 만화책이야말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저 위의 만화책을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 있었다.

성장이란 '모든 시련의 중압에서 먼저 해방되는 것'이란다. 물론 이 텍스트는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무림의 강자들이 흔히 떠벌리는 클리셰 같은 텍스트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렸을 적 쉽게 나에게는 적용될 줄 알았던 이 흔한 교훈은 지금의 나에게 헛된 망상처럼 느껴졌다.


커가며 모든 일에 만화 속 주인공처럼 강하게 이겨낼 줄로만 알았던 나의 모습은 돌이켜보면 생각한 거와 많이 달랐다. 모든 일에 강인하게 대처할 줄 알았던 나는 지극히 평범에 더 가까웠고, 마음은 항상 두려움에 떨어 망설이는 나약한 모습이 더 많았다. 그 많은 순간들을 겪고 나서도 나는 단순히 모든 일에 있어서 잘하기만을 다짐하며 다가오는 시련의 중압감을 어린아이처럼 아직도 우습게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짐들이 오히려 나를 더 머뭇거리게 하고 위축시켰다.

 마음 한편으로 강해지길 계속 다짐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나는 한없이 약해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다짐으로 채워진 욕심보다는 내 약한 모습을 더 당당히 바라보았어야 했고 실패한 과거든 운 좋은 성공이든 온전히 받아들였어야 했다. 쓸데없는 어렸을 적 자신감은 시간이 지나 자만심으로 남아있었던 거다.

구체적인 방법들과 논리적인 계획으로 나는 나를 채우는 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을지언정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겨내 보겠다고 나를 욕심으로만 채워가고 넘어지기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는 좀처럼 용서하지 못해왔다. 만화책으로 깨달은 나의 오만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치여 주눅 들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구체적인 방법들로 채워진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당연한 세상 속 이치를 이야기 속으로 녹여 전달하는 책들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의 독서 경향이 편파적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소설이나 만화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허구 세계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에 맞닿아있다는 것을 이번에 좀 더 명확하게 짚어졌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이게끔 해주는 것이 소설이다. 다양한 해석을 양산할 수도 있고 좀 더 돌려 말하는 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세상도 그만큼 다양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다.


자기계발서처럼 현실적인 부분이나 논리적인 부분에서 거리가 멀고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하지 않지만 우리의 감정과 마음이 현실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야기들을 전하기에 그 가치는 퇴색될 수 없다. 그게 설령 만화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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