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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plash Aug 06. 2018

그렇게 어른이 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2시간 남짓하는 러닝타임으로 모든 스토리를 알려주는 영화에 길들여진 탓일 거다. 이 드라마 이전에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가 응답하라 1988이다. 보통 15부작으로 나눠진 드라마가 나에게는 이야기를 괜히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을 줘서 일 것이다.


이미 올해 초에 종영했지만 나는 최근에야 이 드라마를 다 보았다. 맞다 이 글은 뒷북이다. 여름에 시작해서 급하게 다 보지 않고 천천히, 다음 편이 궁금해지면 보고 그랬다. 작품을 좀 더 곡 씹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이야기 맥락을 보고, 결말까지 다 보고 나서야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이나 내용들이 드라마의 흥미나 재미를 전혀 반감시키지 않았다.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다고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어른'이라는 단어에 이야기가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작품에게서 전혀 다른 메리트를 느꼈다. 일본산 작품들에서나 느껴질 법한 그 색 바랜 분위기라든지 어두운 분위기라든지 그 안에 고심이 가득한 문장들도 그렇다. 또 이 작품은 우리 삶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사건 전개 방식에 드라마적인 요소도 부분을 잘 배치해 놓았다. 이 드라마가 영리하다고 느낀 건 그런 드라마적인 요소와 진정한 어른이라는 주제를 서로 잘 맞물려 놓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비꼰다면 생각할 수 있는 아쉬운 부분들도 잘 가려져 드라마를 보는 몰입감을 높여준다. 또 드라마 안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특히 송새벽) 모든 배우들이 작품의 한 인원으로써 보이게 되고 배우 개개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작품 자체가 근사하고 배우들 연기력도 뛰어났다.


박동훈(이선균)은 부장이고 이지안(이지은)은 같은 회사 파견직이다. 박동훈은 다른 직원들과는 다른 이력서를 보고 이지안을 뽑았고 다른 이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지안이 계속 눈에 밟힌다. 그런 와중에 둘 사이에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기고 그 일로 그 둘은 서로 틀어지게 되는 듯했으나 결국 서로의 경직된 마음, 진실된 속마음을 알아가며 조금씩 서로를 돕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에게는 오히려 말하기 힘든 일들을 알게 되고, 서로 위로해주고 가장 아픈 부분들을 남 앞에서 모른 척해주고, 불쌍히 여겨주고, 서로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진정한 어른으로의 성장과정은 어른이란 타이틀을 얻은 후부터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이후 끝없는 선택의 과정에 얽매이고, 그 책임의 무게는 어지간히 우리 마음에 질척이고 그 기간은 우리가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그 시험을 치러 끝나는 것처럼 깔끔한 구석이 없다. 외력에서 거는 싸움에 강한 내력으로만 버티기는 건물처럼, 우리의 대처는 한 가지로 마냥 버티기만 할 필요 없다.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작품 초반에 던진 이 말은 앞으로의 사건에서 박동훈 자신도 그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어른이 감당할 무게, 어른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나에게 더 높은 어른이란 존재는 없다. 주인공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위로받고 그녀 또한 그에게 위로받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흔들릴 때 자연스레 기대게 되는 갈대가 되는 거라고 건물처럼 경직되어 있을 필요도 없으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하는 듯싶다. 다만 사회 안에서 편견의 벽에 가려져 우리를 오히려 경직되게 만들어 그 자연스러운 흔들림이 낯섦으로 변해 간 것이겠다.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우리 몸에 상처가 나 고름이 터져도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치유되듯 사람은 모두 자가치유능력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여전히 괴롭히는 과거들,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렇게 작품은 이지안과 박동훈은 서로를 통해 조금씩 진정한 어른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서로 다시 만나는 날 웃으면서 서로 인사하는 날을 바라며 각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들 같은 귀한 인연에게 갚는 것이라고 서로 나누지는 못했지만 암묵적으로 그들이 알듯이.


단순한 장르에 치중된 작품이 아니고 진정으로 어른에게 묻는 질문을 던진 드라마라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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