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손에 쥐고 산다는 것
오토매틱 시계를 찬다는 건 마치 시간을 쥐고 있는 거 같고 또 시간을 내가 직접 움직이게 만드는 거 같다. 시간은 나같이 게으른 인간을 기다려 줄리 없지만, 내가 차고 다녀야만 돌아가는 이 오토매틱 시계를 차고 있자니 마치 내가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주체가 되어 마치 내 시간을 잘 관리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손목시계를 오래 차지 않다가 차게 되면 그 손목에 있는 조금 묵직한 감각이 무형의 그것에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시계는 분명 처음에는 이 세상 돌아가는 시간과 같이 스타트를 끊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뒤처질 때가 있고 너무 앞서 갈 때가 있다. 덕분에 나는 아인슈타인도 하지 못한 시간여행을 몇 초간 하게 되는 능력이 생겼다(다행히(?) 시간여행을 몇 분간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랬다간 세상이 큰 재앙(?)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능력이 가르쳐주는 건 우리는 정해진 정확한 시간과 타이밍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이전과 앞으로의 시간을 다 포개고 있는 공간을 품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디나 예외는 있다는 말처럼, 항상 오차범위가 존재한다고 여론이 동의하듯, 내 시공간에 오차범위를 인정해주고 품기로 했다. 오차범위로 벗어나면 다시 바로 잡으면 된다. 바로 잡는 그 시간도 그 이전과 항상 같은 시공간일 것이다. 고로 우리에게는 항상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저 그걸 품으려 하길 바란다.
아날로그시계를 차며 또 느낀 건 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전자시계에 많이 익숙해져 있어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진짜 시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걸 알았다. 요즘 집이나 다른 장소에 있는 원형시계들도 초침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이 시계를 사고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해 계속 쳐다볼 때도 있었고 귀에 가져다 대고 계속 초침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가는 걸 지켜보는 건 꽤 서늘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작은 기계가 밥만 잘 주면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걸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독서실에 엉덩이 띄지 않고 공부만 하고 심지어 잘하는 그런 친구를 힐끗하면 보이는 거리에 두고 사는 느낌이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차고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살자는 주문이 초반부터 아직까지는 잘 먹히고 있다. 이 아이템이 주는 또 하나의 능력 되겠다.
내가 산 이 시계는 아마 오토매틱 시계 중에서 가장 싼 축에 속할 것이다. 오토매틱 시계를 사는 게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이기에 비싼 시계는 계획에 없었다. '오토매틱' 시계면 족했다. 요즘에는 굳이 필요 없는 오토매틱 시계는 이제는 부의 상징 혹은 패션 아이템으로만 치부되고 있지만, 이 손목시계는 나의 원래 목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내가 나이를 먹으며 시간에 대한 생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과거의 물건, 아날로그 물건이 가져다주는 '시선'은 그것의 '감성' 그 이상이다. 시계는 같은 공간을 계속 돌며 앞으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이미 지나간 '과거'같은 것들에 아쉬움들도 동그랗게 그려준다. 우리가 품어야 할 시공간은 앞으로 와 이전의 시간 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