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 미아 Mar 28. 2021

로빈슨 크루소와 모더니티

영문학 리뷰: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28년 동안 무인도에서 생존한 인물이 주인공인 <로빈슨 크루소>는 어린이 동화 시리즈 중에서도 인기 있고 유명한 책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마냥 즐거운 이야기가 아닌, 식민주의와 종교적 메시지, 그리고 유로 센트리즘적 관점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영국은 계몽주의와 모더니티가 비상하고 있었고, 저자인 대니엘 디포(Daniel Defoe)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의 관점을 반영해 <로빈슨 크루소>를 집필하였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짚어보며, 이 소설에 반영된 당대 사회의 특징과 모더니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개인주의와 크루소


모더니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이다. 이 책이 처음으로 가문의 이야기나 로맨스나 국가의 운명이 아닌, 캐릭터의 삶에만 집중해서 쓴 책이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로빈슨이 섬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한 점에서도 개인주의의 특징이 드러난다. 적어도 스스로 자신의 앞가림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비록 난파선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로빈슨이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생존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가져온 옷이나 도구 그리고 총과 같은 것들을 그 누구보다도 잘 활용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로빈슨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절대 고독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미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완전한 고독에서 종교적 구원(Conversion)을 경험했고, 새로운 형태로서 자신의 삶을 재 관찰한다. 로빈슨이 새로운 도구와 물건들을 발명했던 것들은 무인도에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2. 물질주의


책에는 로빈슨이 물질적인 것을 좇는 인물임이 자주 드러나는데,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와중에도 난파선에서 돈을 가져오는 행동이 그중 하나이다. 무인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조건이 매우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에 도움이 되는 그릇이나, 선반과 같이 실질적 ‘사용가치’가 있는 것 들이다. 그렇지만 로빈슨이 챙겨간 돈은 일종의 ‘교환가치’를 띄는 것으로 커뮤니티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용지물이다. 특히나 무인도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는 섬에서 탈출해서 그 돈을 쓸 요량으로 챙겨간 것이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챙겨갔다는 점이 읽는 이들로써는 의아하게 만드는 선택이다. 또한, 로빈슨이 섬에서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간 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그의 재산을 보관하던 미망인이었다는 것, 그가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며 육로로 프랑스를 건너간 이유가 단지 그의 돈을 맡길 만한 인물이 영국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은 로빈슨이 금전적 요인을 우선순위로 두는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에피소드이다.


3. 제국주의와 유로 센트리즘


로빈슨 크루소가 아무도 없는 무인도라고 생각했던 섬은, 사실 원주민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식인을 하러 오는 섬이었다. 로빈슨은 자신의 섬 탈출을 위해 노동력이 필요했고, 적절한 기회를 보다가 섬에 찾아온 식인 원주민 중 하나를 자신의 하인으로 데려오게 된다. 로빈슨이 그 원주민에게 지어준 이름은 ‘금요일’(Friday)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로빈슨은 갈색 피부의 원주민을 처음 만났지만 그의 이름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줬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이름 안에는 정체성과 근본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사람들에게 창씨개명을 하게끔 했던 것도 뿌리를 들어내기 위함이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단순히 로빈슨이 금요일에 그 원주민은 만났기 때문에 ‘금요일’(Friday)라고 지어준 것이라고 나와있지만, 기저에는 로빈슨이 원주민의 목숨을 살려준 날이 ‘금요일’ 임을 불려지는 이름을 통해 기억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따라서 로빈슨이 원주민의 이름을 멋대로 지어주는 행위는 식민주의적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유로 센트리즘적인 태도는 로빈슨에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금요일’에게도 옮게 되는데, 무인도를 탈출한 후 ‘금요일’이가 자기 민족의 사냥 문화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유럽인들의 광대역할을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모더니티에서 빠질 수 없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식민주의’ 코드를 바탕으로 <로빈슨 크루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끝없는 인간의 합리화와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 그리고 종교를 입맛대로 재단해서 당위성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보고 나니,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것들이어서 내가 알고 있던 로빈슨은 누구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간 책을 다시 한번 보기를 바란다. 성인이 돼서 다시 읽는 명작에는 몰랐던 우리 사회의 현실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니까, <벌새>는 우리의 이야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