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처음 해외살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호주 사람들 중에는 음식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많고 비만인 사람이 많다 보니 사회 전반에 걸쳐 건강한 음식, 직접 요리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꽤 높다는 점이었다.
슈퍼마켓의 우유와 요거트 섹션에는 ‘무지방’ 제품이 반드시 함께 진열되어 있고, 간 고기는 지방 함량에 따라 가격이 달리 책정되어 판매된다. 달걀은 자유롭게 풀어 키운 닭의 알인지, 좁아터진 닭장에 갇혀 알을 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한 닭의 알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어 팔린다. 유기농 섹션으로 가면 ‘Gluten Free’, ‘Dairy Free’ 제품들이 있고, 모든 제품 포장의 성분 안내를 보면 우유나 너트, 밀가루 같은 재료들이 굵게 표시되어 있다. 알러지를 일으키는 이러이러한 성분이 들어 있으니 알러지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은 사지 말란 얘기다.
카페에서는 ‘Skinny Latte (무지방 우유로 만든 라떼)’ 혹은 ‘Soy Latte (두유로 만든 라떼)’를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는 못 먹는 음식이나 혹은 그저 기호에 따라 ‘이거는 빼고 저거를 대신 넣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일이 아주 흔하다. 요즈음에는 두유뿐 아니라 아몬드, 헤이즐넛, 코코넛, 귀리 등 다양한 우유 대용 음료가 있어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케이크나 초콜릿, 패스트푸드 등 설탕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을 때는 으레 ‘Guilty Pleasure’를 언급하며 자기 몸에 미안해하고, 잘하든 못하든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는 것을 기본으로 여긴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은 몸에 나쁜 싸구려 패스트푸드건 건강식을 추구하는 최신 유행 카페에서 먹건 신선한 재료를 사다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건강하지 않고 돈도 훨씬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니, 한 가지가 아주 궁금해졌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얘기들을 들어본 적이 없을까?
된장찌개를 주문하면서 ’고기는 빼고 두부랑 표고버섯을 넣어주세요’ 한다거나, 김치찌개를 주문하면서 ‘돼지고기 말고 참치’, 혹은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취향에 따라 선택해 주문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잖은가 말이다.
요즘은 그런 곳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15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대로 먹는 게 당연했고, 기호든 알러지 때문이든 뭔가 다르게 먹으려 하는 사람은 유난을 떤다고 비난받게 마련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는 이게 몸에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 굳이 따지지 않으며,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먹을 때도 딱히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알러지 때문에 먹는 걸 조심해야 하는 사람도 손에 꼽았다. 한국에서 살던 30년 동안 내가 알던 사람 중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복숭아에 알러지가 있던 동료 딱 한 명이었다.
나 또한 스스로 내 몸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크게 까다롭게 따져 묻지 않았다. 맛이 싫어서 안 먹는 것은 있어도,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가족이든 친구든 주변인 누구에게서도 ‘알러지’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우유를 신청해 매일 흰 우유 200ml 팩을 받아 마셨다. 언니도 마시고 동생도 마시니 나도 당연히 신청했지만, 흰 우유 맛이 싫어서 신청하지 않은 친구에게 마시라고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몸이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해 자연스레 입에도 맞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호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냥 내가 쉽게 탈이 나는 사람인가 보다 했었다. 처음에는 우유의 락토스 성분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것 저것 먹어 보며 실험을 해보니, 락토스가 아니라 유지방이 문제였다. 그래서 지방을 제거한 우유나 요거트, 지방이 거의 없는 파마산 치즈 등은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인생의 반을, 아무 생각 없이, 내 몸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아무거나 마구 섭취했다고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을 주문할 때 복잡하게 여러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결코 귀찮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