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요리라는 세계에 광속으로 빠져들게 한 가장 큰 것을 꼽는다면 바로 '오븐'이다.
15년 전 호주로 떠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나 스스로 요리를 해 볼 기회가 없었다.
명절 때마다 엄마와 숙모들을 도와 전을 부치기는 했으나, 나 혼자서 처음부터 뭔가를 만들어 본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라면과 달걀프라이, 카레가루를 사다 만드는 카레라이스뿐이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엄마였고, 그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나를 비롯한 자녀들은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직해 일을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요리와 음식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호주의 홈스테이 집에 도착한 순간, 주방 한 벽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오븐의 자태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몇 주 후 홈스테이를 나와 다른 학생과 하우스 셰어를 하며 살기 시작한 후 나는 빵이며 디저트며 각종 구이 등 오븐으로 만드는 요리들을 매일매일 시도했다.
각종 오븐 요리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제빵이다.
디저트 말고, 'Bread'라 불리는,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로만 만드는 담백한 빵 종류.
바게트, 치아바타, 곡물빵, 호밀빵, 사우어도우, 난, 피타, 베이글, 프레젤, 또띠야.
이런 빵들은 버터나 계란, 설탕 등을 넣지 않아 아주 담백하며, 오븐 안에서 거의 다 구워졌을 때 퍼지는 냄새와 갓 구워져 나왔을 때의 맛이 정말이지 끝내준다.
쌀밥 지을 때의 냄새와 갓 지은 밥의 맛을 상상해보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이 빵들은 사실 수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디저트들보다 만들기가 힘들다.
디저트는 각 재료의 분량을 정확히 넣고 잘 섞어 틀에 붓고 오븐의 온도와 시간을 맞춰 굽기만 하면 대개 성공하지만, 빵은 요리에 대한 센스와 과학적 지식,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스트가 죽지 않을 만큼의 적절한 물 온도를 알아야 하고, 여기에 밀가루와 소금, 물을 넣어 열심히 반죽을 하다 반죽이 적절히 된 시점도 알아야 하며, 반죽이 두 배만큼 부풀 때까지 두어 시간 기다려야 하고, 부푼 후에는 틀 없이 원하는 모양으로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하며, 모양을 만든 후 또 한 번 부풀리느라 기다려야 한다. 또한 반죽을 하는 시간과 방식에 따라 부푸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어 실패 확률도 높다.
시간도 많이 들고 성공확률도 높지 않은 빵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전문 제빵사가 생기고 베이커리가 흥행하게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몇 년 간 디저트류는 자주 만들었지만 빵은 거의 만들지 못했는데, 며칠 전 베이글을 사려다가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만들어 버렸다.
베이글은 약 5년 전 처음 만들어 보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런데 어떤 요리나 그렇듯, 처음 시도를 하면 성공하지만 두번째 시도는 늘 실패한다.
첫 시도 때는 마치 파는 베이글처럼 매끈하고 예쁘게 잘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표면이 우둘투둘한 주름 가득한 베이글이 되었다. 반죽 과정이 완벽하지 못했나 보다.
어찌 됐든,
맛은 좋다.
크림치즈를 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