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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아 Mar 29. 2020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해외생활을 오래 하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한국을 방문할 예정일 때마다, 한국에 가면 꼭 먹을 음식들 목록을 미리 작성하는 것이다.


스스로 각종 한국음식들을 직접 해 먹어 왔지만, 비슷한 재료를 이용해 똑같이 만들어 먹는다 해도 그 맛이 그 맛이 아니고, 한국에서 먹어야 제 맛인 것들이 꽤 많다.

집에서 하면 절대 같은 맛을 낼 수 없는 중국집 짜장면, 나라마다 고기 자르는 방법이 달라 똑같은 부위를 구하지 못해 똑같이 해 먹을 수 없는 대부분의 고기 요리들, 유럽에선 아예 재료를 구할 수 없는 한우구이와 훈제오리, 비슷한 것은 있으나 구하기가 어려운 족발과 곱창 등.


이 중에서 족발은 프랑스와 영국 내 큰 마트 정육코너에 가끔 등장할 때가 있다. 적나라하게 생긴 돼지 발을 날 것 그대로 판다.

이걸 사다가 한국식 족발 레시피를 찾아 가장 믿을만한 것을 선택해 몇 시간 동안 열심히 끓이고 졸이는 과정을 거치면, 한국에서 핸드폰 터치 한 번으로 30분 내에 받아먹을 수 있는 족발과 거의 똑같은 음식이 완성된다. 그거 하나 먹겠다고 하루 종일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종일 걸려 완성한 그거 하나를 맛보는 순간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편육도 만들어 봤다. 프랑스에서 살 때, 어느 날 늘 이용하는 큰 마트 정육코너에서 돼지 머리를 발견했다. 징그러운 살색 껍데기에 여기저기 털도 남아 있었는데, 나는 저걸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랑스 사람들도 돼지 머리를 먹나, 저걸 왜 파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유럽 전역에서 중세시대부터 소작농들이 돼지 머리와 내장 등을 이용해 우리의 편육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 음식을 'Fromage de tête'이라 부른다. '머리로 만든 치즈'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서부터 '머릿고기'가 연상되지 않은가. 물론 요즘은 돼지 머리를 사다가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마트의 델리 코너에 가면 편육처럼 생긴 덩어리를 볼 수 있다.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만든 편육


돼지 머리를 사다가 남아 있는 털을 모두 제거하고, 이리저리 레시피를 검색한 후 편육 만들기에 돌입했다.

사실 살면서 편육을 먹어본 적은 손에 꼽는다. 요즘은 장례식장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비빔밥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잖은가. 그래도, 워낙 돼지고기로 만든 것은 모두 좋아하는 덕에, 겨우 몇 번 먹어본 편육의 생김새와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편육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삶은 후 잘게 자른 돼지 머리를 몽땅 사각틀에 꾹꾹 눌러 담고 무거운 돌을 올려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다. 무거운 돌로 눌리는 과정에서 돼지 머리 부분에 다수 포함되어 있는 젤라틴이 잘게 자른 조각들을 서로 끈끈하게 붙여주기 때문에, 완성된 후 덩어리를 얇게 잘라도 풀어지지 않는다.

역시나 돼지는 버릴 게 없다.


윤기 좔좔 훈제 족발


이번 코로나 사태로 예기치 않게 한국에 오고 2주간 강제로 방콕하며 지내게 되자, 부모님이 내게 먹고 싶은 음식이 뭔지 알려달라 하셨다. 약 스무 가지의 음식을 적은 목록을 톡으로 보내드렸더니, 그 목록을 참고해 며칠 전에는 엄마가 닭강정과 깻잎참치김밥을 사 오셨고, 어제는 아빠가 족발을 사 오셨다.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마트표 훈제족발과, 족발 전문점의 족발냉채, 그리고 편육까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하시며.

이런. 우리 아빠가 불족발은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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