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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아 Aug 25. 2020

My life in 3 bags

예전엔 미처 몰랐다.

전 재산을 가방 세 개에 다 넣을 수 있다는 걸.


여행을 밥 먹듯이 하는 프랑스인 친구 중 하나는 커다란 배낭 하나가 전 재산이다.

바지 두 벌, 티셔츠 두 장, 속옷 몇 개, 양말 몇 개, 쪼리 하나, 노트북과 전원 공급 장치, 휴대전화 충전용 장치, 멀티 플러그 어댑터, 휴대용 커피메이커, 알루미늄 물병이 들어 있다.

보온용 겉옷은 해질 때까지 10년 간 입을 수 있는 튼튼한 노스페이스. 신발은 산과 평지에서 모두 신을 수 있는 사계절용 하이킹 슈즈.

여권과 체크카드, 휴대전화는 지퍼 달린 주머니 많은 노스페이스 재킷에 들어가 있다.


십 년 전 그 친구가 배낭을 보여주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라고 했을 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황당해했었는데, 올 초 영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옷은 빨아 입으면 되니 두 벌씩이면 되고, 비싸서 버리고 또 사기 힘든 휴대전화와 노트북, 카메라 등을 제외하면 다른 물건들은 굳이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어느 곳에 가든, 깡촌 시골이나 가난한 나라에 가더라도, 그곳 모두 사람 사는 곳이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간 수 차례 국제 이사를 다니면서 매 번 지구 반대편으로 수 개에 달하는 무거운 상자들을 우편으로 보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데체 왜 그랬나 싶다.

엄청나게 소중해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었던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옷과 신발, 가방, 책 등을 모두 바리바리 싸 들고 국제이사를 했던 거다.

아마 우편료보다 새 걸 사는 게 더 쌌을지도 모른다.

이 물건들 중에는 25년 전 첫 남자 친구가 사 준 수제 부츠도 있고, 여행 가는 곳마다 사 온 냉장고 자석도 있고, 나를 요리의 세계로 이끌어 준 셰프들의 요리책도 있다. 의미를 부여하자니 모든 물건이 다 소중해져 아무것도 못 버리고 다 가져갔던 거다.


그런데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니, 내 몸이 홀가분해졌다.

무거운 소포를 낑낑대며 우체국까지 가져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도착한 곳에서 소포가 언제 오려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옷이 몇 벌 없으니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당장 고급진 옷이 없어 비싼 음식점에 가지 못하니 밥값이 덜 든다.


나는 내 친구처럼 배낭 하나로는 못 줄이고 결국 가방 세 개는 써야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내 전 재산이 가방 세 개에 모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상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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