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에서 발견되는 궁극적 본질

중세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본질에 대해

by wis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고, 유럽 대륙은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듭니다. 흔히 '암흑시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시기는 기독교라는 강력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와 사상이 꽃피웠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철학 역시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옷을 입게 됩니다.


그렇다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토록 치열하게 탐구했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빛나는 철학적 유산은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재발견되었고, 이제 '본질'에 대한 탐구는 전지전능하고 유일하며 초월적인 존재인 '신(God)'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점 앞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대 철학자들이 자연 속에서, 혹은 인간 이성 속에서 찾으려 했던 궁극적인 '본질'은 이제 창조주 신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받게 된 것이죠. 과연 중세 철학자들은 이 '신'이라는 절대적 기준 앞에서 '본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아우구스티누스: 플라톤의 이데아, 신의 마음속에 깃들다


중세 초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교부(敎父, 초기 기독교의 지도적 신학자) 철학자는 단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 입니다. 젊은 시절 마니교에 빠지기도 하고 회의주의에 방황하기도 했던 그는, 극적인 회심을 통해 기독교로 귀의한 후 방대한 저술을 통해 기독교 사상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의 철학에는 특히 플라톤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이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 로 여겼던 '이데아'의 세계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창조주 신의 지성(divine intellect) 안에 있는 영원한 '예지( exemplars 또는 divine ideas)' 로 재해석했습니다. 즉, 모든 창조될 사물들의 완벽한 '본질'의 원형이 바로 신의 마음속에 영원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참된 '본질'과 존재의 근거는 바로 이 신의 마음속 생각, 즉 신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 역시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참된 행복과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앎은 오직 신앙과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그리고 신에게로 온전히 돌아감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록 첫머리에 나오는 "주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기에,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평안이 없나이다."라는 구절은 이러한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만물의 본질은 신의 창조적 지혜 속에 있으며, 인간 본질의 완성은 신과의 합일에 있었던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신의 존재를 논하다


시간이 흘러 중세 성기(盛期)에 이르러서는 스콜라 철학(교회의 학교에서 가르치던 철학)이 크게 발전했는데,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입니다. 그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이를 기독교 신학과 체계적으로 종합하려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여, 모든 창조된 사물에는 그것이 그 자신이게끔 하는 고유한 '본질(essentia)' 이 있지만, 그 '본질' 이 실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즉, '실존(existentia)' 을 갖기 위해서는) 신의 창조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우리와 같은 피조물에게는 '본질'과 '실존'이 분리되어 있지만(우리는 '인간'이라는 본질을 가졌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죠), 오직 신에게만은 '본질'이 곧 '실존'이며, 이 둘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자신의 '본질' 자체가 '존재함' 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 즉 '존재 그 자체(ipsum esse subsistens)'이자 모든 '본질'과 '실존'의 궁극적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자신의 본질이 곧 존재이므로,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을 받아들여,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telos)은 이성적 능력을 통해 신을 인식하고 사랑하며, 내세에서 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행복(beatitudo)을 누리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도구들을 사용하여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본질'의 문제를 해명하려 했습니다.


보편 논쟁: '인간'이라는 본질은 이름뿐일까, 실재하는 것일까?


중세 철학에서 '본질'과 관련하여 매우 뜨겁고 오랫동안 지속된 논쟁이 있었는데, 바로 '보편 논쟁(Problem of Universals)' 입니다. 이 논쟁은 생각보다 우리 삶과도 맞닿아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논쟁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인간', '동물', '나무'라고 부르는 보편적인 개념(universals)들, 그리고 이 개념들이 가리키는 '보편적 본질'이, 과연 개별적인 사물들과는 별개로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보편적 본질'들은 단지 우리가 여러 개체를 묶어 부르기 위해 만들어낸 편리한 이름이나 생각일 뿐, 실재하는 '본질'은 아닌가?"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보편적 본질이 저와 여러분 같은 개별 인간들 외에 따로 실재하는 것일까요?


실재론(Realism, 극단적 실재론): 대체로 플라톤적인 입장을 따라, '인간'이나 '정의'와 같은 보편자가 개별적인 인간이나 정의로운 행동들보다 더 근원적으로 실재하며, 개별적인 것들은 이 보편자를 나누어 가짐으로써(분유) 그렇게 불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 안셀무스)

온건 실재론(Moderate Realism):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입장을 따라, 보편자는 개별 사물 '안에' 내재하며, 우리 정신이 여러 개별 사물들로부터 공통된 특징을 '추상'해냄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 토마스 아퀴나스)

유명론(Nominalism): 보편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개별적인 사물들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과 같은 보편적인 용어는 단지 여러 개체들을 공통된 특징에 따라 묶어 부르는 '이름(nomen)'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예: 윌리엄 오컴)


이 보편 논쟁은 단순히 단어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보편 논쟁은 신의 존재 방식, 삼위일체 교리의 이해, 인간 인식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지식의 토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본질'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중세 철학자들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세 철학은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본질' 탐구를 기독교 신앙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새롭게 제련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모든 존재와 본질의 궁극적인 근원이자 목적으로서 '신'을 상정함으로써, 세계와 인간에 대한 통일된 이해를 제공하려 했죠.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중세의 신 중심적 세계관에도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르네상스를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종교개혁은 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혁명은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제 '본질'에 대한 탐구는 신의 권위에서 벗어나, 인간 자신의 능력, 즉 '이성' 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파악하려는 근대 철학의 장대한 프로젝트로 그 무대를 옮겨가게 됩니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이 근대 철학의 문을 활짝 연 사상가들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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