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본질에 대해
중세 철학이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 안에서 만물의 궁극적인 '본질' 을 찾으려 했다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경이로운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지성계는 거대한 전환을 맞이합니다. 교회의 권위는 흔들리고,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사유 능력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죠. 이제 '본질'에 대한 탐구의 주체는 신에게서 인간으로, 특히 생각하고 판단하는 '나(주체, Subject)' 자신에게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오게 됩니다.
근대 철학자들은 더 이상 신앙이나 전통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 즉 '이성(Reason)' 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해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 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미지의 신대륙을 탐험하는 용감한 항해자처럼, 이성의 횃불을 밝혀 들고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려 했습니다.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펼쳐진 합리론(Rationalism)은 우리의 감각 경험이 때로는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수학의 공리처럼 의심할 수 없이 명확하고 확실한 원리에서 출발하여, 오직 이성적인 추론(연역)을 통해서만 세계의 참된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합리론의 문을 활짝 연 철학자가 바로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입니다. 그는 기존의 모든 지식을 의심하는 철저한 '방법적 회의'를 통해 단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으며,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고,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죠.
데카르트는 이처럼 '사고하는 나(res cogitans, 사유체)'를 모든 지식의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자, 정신이라는 실체의 근원적 '본질' 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명확한 '나'의 존재를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나아가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물질세계(res extensa, 연장체)의 '본질'이 '공간을 차지함(연장)' 임을 이성적으로 해명하려 했습니다. 그에게 감각은 우리를 속일 수 있지만, 오직 명석판명(clear and distinct)한 이성의 빛으로만 사물의 참된 '본질' 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질' 을 설정하는 이원론을 통해 근대 철학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는 데카르트보다 더 급진적인 합리론을 펼쳤습니다. 그는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 이라고 선언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하고 필연적인 실체는 오직 신(자연)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신과 물질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 것들은 이 유일한 신이라는 실체의 다양한 모습(양태, modes)에 불과하다는 범신론적 일원론이었죠. 스피노자에게 만물의 참된 본질은 이 신적인 실체 안에서 발견되며, 인간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코나투스, conatus)과 이성적인 인식을 통해 신, 즉 자연의 필연적인 질서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공리, 정의, 정리의 형태로 자신의 윤리학을 증명하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천재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합리론적 본질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세상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단순하고 영적인 실체, 즉 '모나드(monad)' 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각 모나드는 자기 안에 활동하는 힘(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작은 우주처럼 예정된 조화에 따라 우주 전체의 모습을 자기만의 관점에서 반영하는 '창문 없는' 실체입니다. 신은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최선의 세계를 현실화한 최고의 모나드이자, 모든 모나드들의 존재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경험론(Empiricism)은 합리론자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이 만들어내는 선험적인 관념보다는, 우리의 오감을 통해 얻는 구체적인 경험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경험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는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서판(tabula rasa)' 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얀 도화지처럼, 우리의 모든 생각과 관념은 오직 감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반성 작용을 통해서만 채워진다는 것이죠.
로크는 사물의 '본질' 에 대한 우리의 앎이 경험에 의해 제한된다고 보며, '본질'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감각 경험을 통해 직접 관찰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속성들의 집합, 예를 들어 금의 노란색, 무거운 성질, 녹는점 등을 가리키는 '명목적 본질(nominal essence)' 입니다. 이는 우리가 소통하고 사물을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이름뿐인 본질'이죠. 다른 하나는 금을 실제로 금이게끔 하는 궁극적인 내부 구조나 미세 입자들의 배열과 같은 '실재적 본질(real essence)' 인데, 로크는 안타깝게도 이 궁극적인 '실재적 본질'은 인간의 경험적 인식 능력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즉 '명목적 본질'만을 알 수 있을 뿐, 그 이면에 숨겨진 사물의 '진짜 본질'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주교였던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는 로크보다 한술 더 떠서 더욱 급진적인 경험론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버클리는 우리가 지각하지 않는 물질적 실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사과'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빨갛고, 둥글고, 달콤한 맛과 향 같은 우리가 지각하는 감각적 관념들의 묶음일 뿐이라는 것이죠. 만약 아무도 지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과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세상은 오직 정신(지각하는 주체, 그리고 모든 것을 항상 지각하는 신)과 그 정신에 의해 지각되는 관념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사물의 본질은 결국 지각되는 관념 그 자체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은 경험론을 그 논리적 극한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개념들, 예를 들어 변하지 않는 '실체(substance)', 통일된 '자아(self)', 그리고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인 인과관계(causality)' 등의 객관적 실재성에 대해 철저한 회의(skepticism) 를 제기했습니다.
흄에 따르면, 우리가 '본질'이라고 굳게 믿는 것들은 사실 반복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 심리적인 습관이나 관념들의 연상 작용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당구공 A가 당구공 B를 쳐서 B가 움직이는 것을 여러 번 관찰하면, A가 B의 움직임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A와 B의 시간적 근접성과 규칙적인 반복일 뿐, 그 둘 사이에 어떤 보이지 않는 '필연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흄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우리가 경험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본질'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주장에 깊은 의문을 던졌습니다.
이처럼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과 그 가능성에 대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팽팽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가 등장하여 철학사에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옵니다. 그는 흄의 회의주의에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하며, 합리론과 경험론 모두 일리가 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둘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려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시도를 흔히 천문학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에 빗대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부릅니다.
무엇이 그렇게 혁명적이었을까요? 이전까지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리의 인식이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거울처럼 비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인식 능력이 외부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인식 형식(틀)이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 자료들을 능동적으로 구성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색안경을 끼면 세상이 그 안경 색깔로 보이듯이, 인간에게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하는 선험적인(경험에 앞서 주어진) 인식의 틀이 있다는 것이죠.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 이라는 선험적인 직관 형식을 통해서만 감각적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인 감각 자료들은 다시 '실체', '인과성', '상호작용' 등 12가지의 순수한 지성 개념(범주, categories) 이라는 틀에 의해 질서 지워지고 종합되어 비로소 우리가 '이것은 책상이다', '저것은 원인이다'와 같이 의미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객관적인 경험 세계, 즉 '현상(phenomena)'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우리의 인식 틀을 통해 구성된 '현상' 세계가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벗어나 있는, 즉 우리의 시간, 공간, 그리고 지성 범주라는 틀을 거치지 않은 '사물 자체(Ding an sich, thing-in-itself)' 의 세계, 즉 '물자체(noumena)' 가 존재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이 '물자체'야말로 어쩌면 사물의 궁극적이고 객관적인 '본질' 에 해당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궁극적인 본질'은 인간 인식의 한계 너머에 있기 때문에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결론이었습니다.
결국 칸트에게 있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의 본질'이란 이성의 보편적인 구조에 의해 매개되고 구성된 '현상으로서의 본질' 에 국한됩니다. 그 너머의 '물자체로서의 참된 본질' 은 영원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게 되는 거죠.
칸트에게 있어, 우리가 파악하는 '세상의 본질'이란 결국 우리 인간 이성의 보편적인 구조에 의해 매개되고 구성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객관적인 본질'을 직접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고, 철학은 이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질문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됩니다.
근대 철학은 이처럼 '이성'과 '사고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팽팽한 대립, 그리고 칸트의 심오한 비판 철학을 통해 '본질' 인식의 가능성과 그 명확한 한계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 칸트가 그어 놓은 '알 수 없는 물자체'라는 경계선은 이후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경계선을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본질'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고민들이 바로 다음 장에서 살펴볼 현대 철학의 다양하고도 급진적인 흐름들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