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본질'과 '이데아'의 세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본질에 대해

by wis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이 주로 우리를 둘러싼 외부 세계, 즉 자연의 근원적인 '아르케'를 탐구했다면, 이제 철학의 무대는 에게 해를 건너 아테네로 옮겨오면서 그 관심사 또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합니다. 더 이상 별의 움직임이나 물질의 구성 요소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철학자들의 시선은 이제 '인간' 그 자신, 그리고 인간의 삶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삶인가?", "참된 앎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들이 철학의 중심 화두로 떠오른 것이죠.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 영혼과 덕의 '본질'을 묻다


이러한 철학적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아테네의 기인이자 현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약 470~399) 입니다. 그는 이전의 철학자들처럼 자연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테네의 아고라(광장)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정의로운 행동'들을 나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모든 행동들을 정의롭게 만드는 '정의 그 자체(Justice itself)'의 보편적 '본질' 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넘어 '아름다움 그 자체(Beauty itself)'의 순수한 '본질' 을 탐구했죠.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개별적이고 변화하는 현상들 너머에 존재하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경우에 타당한 윤리적 가치의 '본질(whatness, 무엇임)' 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본질'에 대한 앎은 곧 올바른 삶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유명한 경구,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단순히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을 파악하라는 의미를 넘어섰습니다. 경구는 자신의 영혼(psyche)의 상태를 끊임없이 돌보고, 그 영혼의 참된 본질, 즉 '덕(arete, 탁월함)'을 탐구하라는 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부나 명예, 육체적인 쾌락과 같은 외적인 것들에만 몰두하며 정작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에 대한 참된 앎(episteme)이야말로 진정한 '덕'과 직결되며, 덕있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으로 좋은 삶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악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생각처럼, 무엇이 옳은지 진정으로 안다면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입장을 취했던 것이죠.


플라톤: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데아'의 세계를 열다


불행히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불꽃같은 사상과 삶은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 플라톤(Plato, 기원전 약 428~348) 에게 깊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보편적 본질'에 대한 질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인 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이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한 현상 세계 너머에, 영원하고 완전하며 불변하는 '이데아(Idea)의 세계' 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이데아'야말로 모든 사물의 참된 실재이자 완벽한 본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개별적인 삼각형들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고, 완벽하게 그려지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플라톤에 따르면, 이 모든 불완전한 삼각형들은 저 너머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완벽한 '삼각형의 이데아'를 어설프게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삼각형의 이데아'만이 참된 삼각형의 본질인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기하학적 대상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탐구했던 윤리적 가치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정의로운 행동들'이 있지만, 다양한 행동들을 정의롭게 만드는 근원적인 '정의의 이데아'가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있으며, 모든 이데아들의 정점에는 마치 태양처럼 다른 모든 존재와 앎의 근원이 되는 궁극적인 '참된 원인'이자 최고의 본질, 바로 '좋음의 이데아(Idea of the Good)' 가 자리 잡고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습니다.


이원론적 세계관: '본질'은 저 너머에 있다


결국 플라톤에게 '본질'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감각적이고 변화무쌍한 현상 세계가 아니라, 오직 순수한 이성(nous)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저 너머의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계라는 두 개의 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이원론적(dualistic) 특징을 보여줍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본래 이데아계에 속해 있었지만,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면서 이데아의 세계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상계의 불완전한 것들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완전한 이데아를 기억해내는 것, 즉 '상기(anamnesis, 想起)'를 통해 우리는 참된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철학적 탐구와 교육은 바로 이 잊혀진 이데아를 다시 떠올리고, 영혼을 정화하여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통해 '본질'에 대한 탐구는 외부 자연 세계의 물질적 근원을 넘어, 인간의 내면세계와 윤리적 가치, 그리고 감각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실재의 영역으로까지 그 지평을 극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그들이 던진 '보편이란 무엇인가?', '참된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후 서양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물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러한 이원론, 즉 '본질'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저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그의 가장 총명하고 비판적인 제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과연 '본질'은 정말 저 멀리 하늘 위에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 중요한 질문에 답하며 스승의 철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넘어서려 했던 인물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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