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아르케'가 있었다

자연철학자들의 만물의 근원 찾기

by wis

우리의 '본질' 탐험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활기찬 식민지였던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서부 해안)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그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의 철학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놀라운 시도를 시작했죠.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신화나 종교적인 이야기로 설명했습니다. 천둥 번개는 제우스 신의 노여움이고, 풍년과 흉년은 신들의 변덕에 달린 것이었죠. 하지만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신화적 설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성과 관찰을 통해 세계의 근본적인 이치, 즉 만물을 이루고 있는 궁극적인 '근원'이자 모든 변화의 '원리'인 '아르케(archē)' 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양 철학사에서 '본질'을 향한 최초의 질문들이자, 합리적 사고의 위대한 출발이었습니다.


밀레토스 학파: 세상을 이루는 단 하나의 물질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이 위대한 질문의 문을 연 것은 밀레토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학자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탈레스(Thales, 약 기원전 624~546) 는 "만물의 근원은 물(water) 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왜 하필 물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는 물이 액체, 고체(얼음), 기체(수증기)로 모습을 바꾸면서도 그 본질을 유지하고, 모든 생명체가 물 없이 살 수 없다는 점을 관찰했을 겁니다. 비록 지금의 과학적 시각으로 보면 단순해 보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다양성을 '물'이라는 단 하나의 물질로 설명하려 했다는 그 발상 자체가 혁명적이었습니다.


탈레스의 뒤를 이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약 기원전 610~546) 는 스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아르케가 물이나 불처럼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특정한 성질을 가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물이 근원이라면, 불과 같은 반대 성질의 것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는 아르케를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규정되지 않고 무한한 어떤 것, 즉 '아페이론(apeiron, 무한정자/規定되지 않은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추상적인 원리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는, 더욱 철학적인 접근이었죠.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약 기원전 585~528) 는 다시 구체적인 물질로 돌아와 아르케를 '공기(air)'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기가 옅어지면 불이 되고(희박화), 짙어지면 바람, 구름, 물, 흙, 심지어 돌까지 된다(농축화)고 생각했습니다. 공기의 팽창과 수축이라는 변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설명하려 한 것이죠.


이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들의 주장은 각기 달랐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해 보이는 이 세상이 사실은 어떤 단일하고 근원적인 '본질' 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수많은 레고 조각들이 결국 몇 가지 기본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려는 시도와 같았죠.


하지만 만물의 '본질'을 단일한 물질로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철학자들은 더욱 근본적인 질문과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경험하는 이 '변화' 그 자체가 세계의 본질일까요? 아니면 그 변화 너머에 영원히 '불변하는 존재'야말로 진정한 본질일까요? 이 첨예한 문제에 대해 상반된 답변을 내놓으며 이후 철학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상가가 있었으니,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입니다.


변화하는 세계 vs 불변하는 본질: 뜨거운 논쟁의 시작


에페소스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약 기원전 535~475) 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 (Panta rhei)" 즉,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강물은 계속 흘러가기에, 우리가 다시 발을 담그는 순간 이미 이전의 강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에게 세상의 본질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 그 자체였고, 이 변화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 즉 '로고스(logos)'와 모든 것을 살리고 또 소멸시키는 '불(fire)'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반면, 엘레아 출신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6세기 말~5세기 중반) 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오직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대원칙을 내세웠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존재, Being)' 은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완전하고 유일하며 움직이지 않고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변화나 다양성은 모두 착각이거나 가상일 뿐이며, 참된 실재이자 불변하는 본질은 오직 이성으로 파악되는 '하나의 존재'뿐이라고 주장했죠.


이 두 철학자의 상반된 주장은 '본질'이 과연 변화하는 현상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실재인지에 대한 깊고도 첨예한 고민을 후대 철학자들에게 남겼습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와 '불변'이라는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어떤 철학자들은 어쩌면 세계의 '본질'이 단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혹은, 눈에 보이는 거대한 변화 이면에 있는 미세한 요소들의 조합이나 운동이야말로 진짜 '본질'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나아가기도 했죠. 이렇게 다원적인 관점에서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이들이 바로 다원론자들과 원자론자들입니다.


다원론과 원자론: 본질은 하나가 아닐지도 몰라!


시칠리아 출신의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약 기원전 494~434) 는 흙, 물, 공기, 불이라는 네 가지 원소(뿌리) 가 만물의 근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4원소들이 '사랑(philia)'이라는 힘에 의해 결합하고 '미움(neikos)'이라는 힘에 의해 분리되면서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죠. 마치 팔레트 위의 네 가지 기본 물감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클라조메나이 출신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약 기원전 500~428) 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아주 작은 '씨앗(spermata)' 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 안에는 모든 것의 부분이 들어있다"는 그의 말처럼, 예를 들어 머리카락 안에는 뼈의 씨앗, 살의 씨앗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던 씨앗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운동시켜 현재의 우주를 만든 힘을 '누스(nous, 지성/정신)' 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원리나 목적이 세계의 본질과 관련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라키아 압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약 기원전 460~370) 는 그의 스승 레우키포스와 함께 원자론(atomism) 을 발전시키며, 만물의 궁극적인 '본질' 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그에게 세상의 참된 실재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아주 작은 입자인 '원자(atom)' 와, 이 원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텅 빈 공간(허공)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진 이 '원자'들이 서로 기계적으로 결합하고 분리되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았죠. 즉, 모든 것의 근원적 '본질'은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배열과 운동이라는 매우 강력한 물질주의적 입장이었고, 이는 이후 과학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초기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적인 '본질'을 찾기 위해 놀라운 지적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때로는 소박하고 그 답은 지금의 우리에겐 낯설지 몰라도,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위대한 첫걸음은 철학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튼튼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주로 우리를 둘러싼 외부 자연 세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철학의 관심은 점차 인간 자신, 그리고 인간의 '앎'과 '삶'의 문제로 그 방향을 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극적인 전환의 중심에는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빛나는 제자 플라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본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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