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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숲 혜림 Oct 21. 2024

손끝으로 따라 쓰는 감사 명언-11일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 말을 써내려갔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부터 아이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 혼날 밖에 없었죠.

집에 오면 저한테 혼나고...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보다 웃지 않았어요. 

이런 아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는 걸까요?

제가 사실 이혼하고 친정부모님이랑 아이를 키우고 있거든요." 


의사는 이어서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따가운 말들을 피해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할 뿐이었다.

오로지 입에서 나온 말을 통해 아이의 상태에 대한 '마지막 한마디'가 결정됐다.


"소아 우울증으로 보입니다. 더 자세한 건 검사를 통해 알아봐야겠네요."

"소아 우울증이요?"

추가적인 검사를 위해 다시 또 병원에 방문할 것을 권했다.

의사의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받고 싶었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보낼 선물을 포장하고 있는데 아이가 다가온다.

"엄마, 제가 도와드려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여기 앉아서 한 번 해봐."


혼자 하면 더 빨리 할 텐데 아이의 질문에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엄마, 이건 뭐예요?"

"이름 스티커 붙이는 거야."

"제 이름도 만들어도 돼요?"

"그래, 한 번 해봐."


핸드폰에 자기 이름을 쓰고 글자 크기를 조절한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이름표를 만들어냈다.


아무 것도 혼자 하지 못하던 아이가 해내고 있다.

감사하다. 또 감사하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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