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는 걱정하고 있을 내 마음을 달래주려고 전화를 하셨다.
"옷 잘 갈아입혀서 집에 데리고 왔어.
딸 걱정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다가 와."
"엄마,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 하지말고, 너한테는 엄마가 엄마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마.
너를 위해서 엄마가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야."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기 위해 살아온 딸이었다.
이제는 그 행복을 위협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와 아이의 존재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나와 아이만 없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았다.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의 뇌는 무서웠다.
모든 사고의 흐름이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틈을 단 1%로도 주지 않았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라는 명령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채워져있던 노트에는
'죽고싶다.'라는 말로 어둡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더이상 살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듯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커다란 투명 막 속에 갇혀버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차에 짐이 많아 혼자 다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주차장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핸드폰이 없기에 엄마를 마냥 기다릴 수 밖에는 상황이었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기둥 뒤에 몰래 숨어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잘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한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아이는 차 안에 있는 짐을 꺼내서 들고 간다.
이제 아이가 나를 도와준다.
감사하다.
또 감사하다.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