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대신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주기로 하셨다.
콩나물 국에 옷이 젖은 아이를 만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지금 당장 아이에게 달려가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당장 휴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일을 쉰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아졌는데 쉴 수가 없었다.
휴직을 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아이에게 무얼 해줘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머리가 마비가 된 듯 멈춰버렸다.
옆에 있던 동료가 불안에 휩싸인 내 모습을 보고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책꽂이에 꽂혀 있는 파란색 연습장을 꺼냈다.
책상 위에 있는 펜을 아무거나 덥석 잡았다.
그리고 썼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제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간 친정 엄마의 전화였다.
아이가 하나도 풀지 못한 수학 시험지를 갖고 왔다.
40분 동안 버텨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 풀어보려고 했는지 썼다가 지운 흔적이 있었다.
"40분 동안 가만히 있으려면 힘들었을 텐데 조용히 참아내고 대단한데?"
"하나도 못 풀었는데 괜찮아요?"
"그럼 너는 너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거야.
그 속도는 언제 갑자기 빨라질지 아무도 몰라.
그냥 누가 더 꾸준히 가는지가 중요해."
아이의 수학 시험 점수가 인생의 점수는 아니다.
괜찮다.
40분을 버텨낸 힘에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