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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Oct 05. 2023

나의 운전기

초보운전자의 운전기 2

대중교통 찬양론자였다. ‘차 많은 서울 하늘 아래, 굳이 나까지 보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20대를 버텼다.      

그런 내가 면허를 딴 건 타의에 의해서다. 

둘째 돌이 지난 어느 날, 아빠가 100만 원을 주셨다. 하도 안 따니까 딸과 며느리 손에 직접 돈을 쥐여 주신 거다. 사이좋게 묵혀두다가 12월이 되어서야 올해는 넘기지 말자며, 새언니와 손 잡고 필기시험을 보러 갔고, 다음 해 3월- 우리는 따끈따끈한 초보운전자가 되었다.

첫 운전은 광명, 그 다음은 김포. 도로의 언어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과 보다 편하게 멀리까지 놀러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싹텄다.


운전은 친정오빠 차로 했다. 작은아빠에게 물려받은 연식 있는 승용차로, 범퍼카같이 부담 없는 차였다. 주 목적지는 소아과, 주차는 자신감 만렙. 그러나 오빠 네가 곧 이사를 갔다.

우리 차는 남편 회사 차다. 내가 사고를 내면 남편 회사에 서류상 취업을 하자 했는데 갑자기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해 버렸다. 남편은 내게 운전대를 주지 않았다. 

남은 차는 아빠 차. 나의 방향감각과 길눈을 인정하던 아빠는 면허만 따면 차키를 줄 것처럼 굴었었다. SUV라 망설였지만 방도가 없다며, “아빠, 나 차 키 좀.” 하니 갑자기 얼굴을 바꾸셨다. “내 차는 안 돼!”


그렇게 몰 수 있는 차가 제로가 되면서 의도치 않게 장롱면허가 되었다.      

작년, 그날이 있기 전까지….


5시에 퇴근 후, 아이 둘을 하원해 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소아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6시가 지나버렸다. 버스에 이미 사람이 많아 우리 셋은 서서 가게 되었다. 대학교 정문에 버스가 닿자 학생들이 밀려 올라왔다. 바로 다음에 내릴 거라 마냥 밀릴 수는 없었다. 못 버틸 것 같은 둘째를 왼팔로 안아 들고 왼손으로 하차문 근처 손잡이를 잡았다. 첫째는 내 몸에 기대게 하고 오른팔로 아이를 머리와 등을 보호했다. 미처 못 볼 수도, 책가방에 아이가 치일 수도 있기에…. 그렇게 긴장하며 온몸으로 둘을 지켰다. 왼쪽 손목이 시큰하다 못해 바늘이 가로로 손목 중앙까지 찔러들어오는 듯했다. 출산 시 산모의 뼈마디는 아이를 낳기 위해 이완된다. 산후에 늘어난 뼈마디가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조리를 잘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왼쪽 손목이 여적 말썽이다. 


버스가 멈추고 첫째에게 먼저 내리라고 하고 오른손으로 버스카드를 태그하고 내렸다. 둘째를 땅에 내려놓고 부들대는 왼쪽 손목, 다리와 팔에 힘이 탁 풀리며 주저앉아 하찮아진 나와 손목을 감싸안았다.


“엄마! 나는 왜 안 잡아줘? 나 무서웠잖아!”


첫째가 내릴 때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며 짜증 냈다.

정신이 번쩍 났다. 버스정류장 한복판, 여기서 울면 집에 갈 기력이 없다. 집어넣어야 한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찍어 넣고,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서서 하늘을 봤다. 나간 정신을 겨우 붙잡아 넣고 두 녀석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무슨 정신으로 저녁을 했는지 혹은 시켰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던 그날을 계기로 

‘나를 보호해야겠다, 퇴근시간에는 버스를 타지 않겠다, 아니 운전을 하겠다’ 마음 먹었다. 


서러움.

그것이 운전대를 다시 잡은 이유다.


아직은 달달 떨며 다니는 초보운전자 1로 경험치 축적 중이지만

언젠가는 그냥 운전자 1로 거듭나 애들과 자동차여행을 떠날 거다. 

서러움은 다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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