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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Oct 24. 2023

요양보호사? 제가 왜요?

<불효녀 일기>

직업이란 무엇일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근로하는 것, 누군가는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 길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기능함으로써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것 등, 직업은 삶이다.

 

3년 전 이맘때, 전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요양보호사*.

 

당시 아빠가 장거리 일을 다녀서 복남 씨, 유아와 영아의 삼시세끼를 차리고 모두가 잠들면 새벽까지 일을 하고, 여유라곤 배달음식을 시킬 때만 있던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내 몸 돌볼 겨를도 없었으니 마음과 영혼은 오죽하랴.

홧병이 이런 건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작은 숨 한 조각에도 분노가 서려 있던 시절이었다.

 

추석에 만난 작은엄마가 복남 씨의 상태를 보더니 나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으셨다. 아빠를 안쓰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가까이서 복남 씨를 챙기느라 삶을 들이고 있으니.

 

그렇지만, 그렇다고, 제가요? 요양보호사요? 왜요? 딸이라서요? 집에 있어서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나쁘다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어르신? 나 어르신 좋아하지, 복남 씨를 돌보는 것처럼? 할 수 있지, 말벗도 되어 드리고 반찬도 해드리고 씻겨드리고, 외롭고 힘든 분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나 좋아 그런 일- 앞으로는 노인인구가 많아지니까 괜찮은 직업이려나? 내가 너무 인기가 많아지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러다가 돌아가시면 너무 슬프겠지, 돈을 받는 거 말고 봉사로 하면 더 좋으련만, 역시 나는 돈 되는 일과는 맞지 않는 건가?

 

아니, 근데 잠깐.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나?

 

요양보호사를 따서 복남 씨를 케어한다면 돌봄은 나의 ‘일’이 된다. 전적으로 나의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나로 살아야 하나, 다른 일은 꿈꿀 수 없나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날선 분노가 덮쳐 왔다.

 

복남 씨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요양보호 대상이 되려면 장애 평가를 거쳐야 한다. 장애진단기관에서 전문가가 와서 복남 씨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질문해서 사회적 기능과 신체적 기능을 평가해야 한다. 과정이 오래 걸릴 뿐더러 인지기능이 남아 있는 이에게는 평가 자체가 상처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돌봄으로 아빠가 경제활동을 못 해서 그 지원금이 필수 불가결한 상태라면 복남 씨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겠지만 우리는 생활이 가능하니 그런 복지 예산은 다른 이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낫겠다며, 복남 씨의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지진 않도록, 그녀의 존엄을 지켜주기로 한 터였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구직활동 없이 취업이 되었다. 상황 때문에 입사를 반려하니 근무시간 단축, 재택근무로 일하게 해주었다. 감사한 배려였다.


그리고 그 후 아무도 내게 요양보호사가 되라고 하지 않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모든 일은 사회를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스스로 가슴 뛰는 고민을 해야 한다. 돌봄의 몫이 딸 앞에 당연히 놓여져서는 안 된다.

 

나는 어떤 존재, 무엇이 되어야 하나,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 여전히 고민하지만

여전히 남이 하라는 건 하기 싫은 주체적인 청개구리다.

 

* 주로 생활 복지시설 또는 재가서비스를 통해 방문한 가정에서 고령이나 노인성 질환 등을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성인에게 신체활동 및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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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방지하고 몇 글자 덧붙인다면, 작은엄마는 감사하고 좋은 분이다. 

당시 이미 울퉁불퉁한 나에게 그 말이 뾰족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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