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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Nov 01. 2023

야매 미용사

<불효녀 일기>

예로부터 명절 전에는 치뤄야 할 의식이 있다. 

목욕재계, 꼬까옷 사기(혹은 입을 옷 준비해놓기), 그리고 머리 하기.     


흰머리 5센티나 보인다. 염색한 지 벌써 2달이나 됐다. 명절이 코앞이니 오늘은 꼭 염색을 해야 한다.

복남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물러설 리 없는 막내딸.     


“염색 안 한다고? 그럼 커트할래?”

도리도리.

“에이~ 둘 중 하나는 해야지. 염색? 커트?”

끄떡끄떡.

“커트? 정말? 어른 커트는 안 해 봤는데? 괜찮아?”

끄떡끄떡.

“오오케이! 망치면 그때 미용실 가자?”     


그렇게 오픈한 야매 미용실.     




신문지 위에 의자를 세팅하고 TV를 틀고 쇼파에 앉아 있는 복남 씨를 옮겨 앉혔다. 앞과 등만 가려주는 셀프염색용 비닐가운을 머리핀으로 고정하고 미용용품의 전부인 일자가위와 숱가위, 분무기, 꼬리빗, 집게 2개를 손이 닿는 곳에 세팅했다.

커트 경력 7년차. 1년에 2~3번 오픈해 늘지 않는 실력. 맡기지 않겠지라는 믿음으로 던진 말에 내가 걸려 넘어지다니.     


마주한 복남 씨의 머리카락은 파마기가 거의 남지 않은, 어깨를 20센티 넘긴 길이. 미용실 마지막 방문 시기가 1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추정된다.

벌써 그렇게 됐나, 두문불출한 게.     


칙칙칙칙 샥샥샥샥.     


숱이 그나마 풍성한 쪽에 가르마를 내고 세로로 반을 또 나눴다. 대략 1/3지점에 빗으로 정갈하게 길을 내, 2/3는 왼손으로 감아올려 집게로 고정하고 아랫부분은 샥샥 빗어 내린다.     


칙칙칙칙 샥샥샥샥.     


빗고 빗고 빗어 일자로 만든 머리카락을 왼손 집게와 검지로 단단히 고정하고 손가락 아래로 가위질을 시작했다, 싹둑싹둑.

제일 아래, 3번(편의상 1/3을 1, 2, 3으로 부르고자 한다) 머리카락은 윗머리들의 기초선이기에 실눈을 하고 수평에 힘썼다.

그러나 복남 씨의 구부정한 등허리가 펴졌다가 느슨해졌다가를 반복할 때마다 수평이 무너졌다. 다시 다시 다시, 어느새 20분이 흘렀다. 첫째 하교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한 곳에 너무 집착했네, 2번 머리로 넘어가자.     


집게를 푸르고 칙칙칙칙 샥샥샥샥.     


2번은 3번에 맞춰 싹둑싹둑 자르다 보니 왼쪽이 더 길었다. 다시 수평을 맞추다 보니 점점 짧아지며 복남 씨 목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귀밑 1센티가 되겠는데? 다음에 또 맞추자. 서둘러 1번 머리카락을 내렸다.     


칙칙칙칙 샥샥샥샥.     


2, 3번에 맞춰 1번을 싹둑싹둑, 또 왼쪽이 길었다. OMG. 좌절할 시간은 없다. 3번을 임하는 자세로 다시 수평을 맞췄다.     

얼추 맞았다 싶었는데, 복남 씨의 자세에 따라 속머리가 삐죽대며 바깥 머리카락을 뻗치게 했다. 고개를 숙이게 하고 속머리를 숱가위, 일자가위로 제초기처럼 쳐냈다. 겉이 가볍고 짧으면 안 뻗치겠지 하며 1번도 숱가위로 숭덩숭덩 쳐냈다. 계속된 숭덩숭덩에 어느새 처음 잡은 길이보다 3센티 이상 짧아졌다.

그래도 자르지 않았을 때보단 말쑥해졌겠…지…?     


비닐가운 벗기고 복남 씨를 쇼파에 앉힌 뒤 머리카락 잔해를 지웠다. 화장실에 모셔 가서 또 한 번 삐죽대는 부분을 다듬고 샴푸와 샤워, 환복까지 마쳤다.

롤빗과 드라이어를 대동해 머리를 안쪽으로 안쪽으로 말았다. 커트 실력이 묻히도록.     


짜잔!


거울을 들이미니 다행히 복남 씨는 입꼬리를 올린 채 말 없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무료치고는 나쁘지 않지?”     


막내딸, 편집자, 복남 씨 재활운동가, 두 개구쟁이 보육자, 한 그릇 요리사, 아직도 자라고 싶은 성장욕구가.

나의 N잡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야매 미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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