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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Nov 08. 2023

각자의 사정 1

<불효녀 일기>

오빠는 복남 씨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아들이자 친구이자 남편이자 가장. 살 이유가 되어 준 구원.     


“이제부터 니가 이 집의 가장이다.”     


막 중학생이 된 오빠는 아빠에게서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넘겨받았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밀려나 앉은 단칸방까지 빚 독촉이 쫓아왔다. 아빠는 전략적 후퇴라며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그때부터였다. 오빠는 일찌감치 마음으로 식구를 부양했다.      


살기 위해 복남 씨는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일찍 일어나 도시락 3개(오빠 2개, 나 1개)와 아침을 준비해 놓고 출근 준비를 했고 저녁에는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잠이 들었다. 오빠는 그런 복남 씨를 안쓰러워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철없는 나를 안타까워했으며, 자신은 어떻게 이 집에 도움이 될까 고민했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서 학원을 다녀온 후에도 새벽 2시까지 스스로 공부했다. 덕분에 나는 오빠의 시험기간이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은 신문배달 면접을 보고 왔다. 미래보다 현재의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였겠지만 이틀 출근하고는 넉다운돼 복남 씨에게 혼나고 그만두었다.

남들은 삐삐에서 스카이로 넘어갈 때도 아빠가 물려준 벽돌폰을 들고 다녔는데,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자신을 긍정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수치를 복남 씨 앞에서 티내지 않는 애어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안경 쓴 어른스러운 모범생.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그는 그렇게 읽혔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복남 씨의 젊음을 지불하고 산 집으로 이사했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햇살이 깊숙이 내려앉은 식탁에서 대학생이던 오빠는 복남 씨랑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지, 엄마와 할 이야기는 뭔지, 친구가 없는 건지, 바깥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거뭇한 청년이 엄마랑 친구처럼 연인처럼 이렇게 도란도란 논단 말인가. 시선마저도 삐딱했던 당시의 나는 바로 방에 들어갔지만 오빠는 그렇게 복남 씨의 마음을 채워 주었다.     


지금의 오빠는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다람쥐 같은 아들 둘의 아빠가 되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고 일을 하고 키워내야 하는 인생들이 있어서 복남 씨의 아들로 살아가기 어렵지만 여전히 하루 3번 전화해 복남 씨에게 일상을 재잘거린다.     


요즘의 나는 ‘딸이 최고다, 니가 애쓴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오빠랑 새언니도 ‘고생한다, 내가 모시고 갈까’ 묻고는 한다.

돌보고 씻기는 일을 오빠가 한다면 보낼 수 있지만 새언니에게 대신 시킬 수는 없다며, 복남 씨도 바라지 않을 거라고 거절했지만,      


사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오빠는 10~20대에 그 몫의 효도를 다 했다고,

복남 씨가 가장 외로웠을 시간에 혼자 두지 않고 빛이 되어 주었다고,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를 내지르는 청개구리 딸래미보다는 훨씬 나은 자식이었다고,

그랬기에 복남 씨가 두 번째 우울이었던 갱년기를 견뎠다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이제는 내 차례라고,     


이제는 누구의 아들에서 벗어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두 아들의 아빠로서

그리고 인간 이영훈으로서

잘 살아가라고,     


그저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지원군이 돼 주고

투정을 들어주고

복남 씨의 상태, 가장 밑바닥까지 함께 논의하자고,     


살아내느라, 자라느라 고생했다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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