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녀 일기>
4월 13일.
부자가 되는 책 읽기 워크숍을 하는 중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추적하며 기록하고 공유하는 미션이 있었다. 기록할 것은 3가지. 한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 매일 나의 목표를 위해 어떤 것을 했는지 기록하고, 하면서 깨달은 점, 변경하거나 추가적으로 적용할 점은 무엇인지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복남 씨 운동일지.
육아휴직 한 후에는 오전에는 내 운동,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복남 씨 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이전에 복남 씨와 운동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식탁을 돌던 것도 하체운동을 하던 것도 그대로다. 그 하던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뿐이다. 복남 씨에게 어떻게, 얼만큼 운동시켰는지 기록하고 깨달은 것, 적용할 것에는 복남 씨의 컨디션이나 내 생각을 남겼다.
기록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복남 씨 운동을 횟수를 채우거나 숙제처럼 의례적으로 해치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다음의 할 일을 머릿속에 그리며 식탁을 돌거나 같이 티비를 보면서 침묵 속을 걷고 있었다. 뜨끔했다.
기록을 했을 뿐인데 우리의 시간이 달라졌다. 복남 씨의 안색이나 기분, 근육 증가 여부, 허리의 각도, 다리의 휘청임 등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며칠 전의 복남 씨 컨디션의 차이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대화를 했구나,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더듬을 수 있었다. 덤으로, 이런 걸 글로 써보면 좋겠다며 소재를 얻었다.
운동기록은 그러니까 나에게 가장 유익했다.
그 워크숍으로 바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더나은 삶으로 이끌 만한 좋은 습관이나 마인드를 배우고 1그램이라도 흡수하는 것. 함께 들은 다른 분들은 소비, 식사, 공부 등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 미션에 나는 왜 복남 씨의 운동일지를 선택했을까?
나중에 목표한 바들을 이루고 행복해졌는데 복남 씨가 그대로라면 나의 행복은 어딘가 찌그러진 모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려 본 더 나은 미래, 거기에는 복남 씨 자리가 뚜렷하게 있었던 것이다.
내 행복의 첫 단추가 복남 씨의 행복인가? 아니다. 철저히 내 행복을 위해서였다. 아프지 않은 복남 씨, 이전처럼 자신의 삶을 사는 복남 씨가 되어야 나도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훨훨 날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살려면 내가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독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 복남 씨의 쾌유를 바라며 운동일지를 선택한 것이다.
기록들을 돌아보니 복남 씨는 생각보다 꾸준히 운동했고 나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했으나 우상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불성실했던 건 나였다. 운동을 안 시킬 때도, 운동했으나 기록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바쁘다며 아빠에게 운동을 미룬 날에는 기록도 남기지 않고 안색도 덜 살폈다. 그러면서도 주말이 지나고 나빠진 복남 씨의 컨디션을 마주하면 무너지고 좌절했고, 복남 씨의 작은 말과 표정, 침묵과 휘청임에 같이 휘청거렸다. 가을이면 낙엽을 밟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식탁에 머무르고 있다고 속상해하고 있는 건 복남 씨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복남 씨의 운동일지인 줄 알았지만 이것은 복남 씨와 나의 기록, 우리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2장 남은 노트를 보며,
2023년의 우리의 기록을,
기록의 쓸모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다.
'복남 씨의 운동일지'.
앞으로 어떻게 운동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마음들이 남을지,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기록될지,
두 번째 노트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