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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Nov 23. 2023

밝혀진 병명

<불효녀 일기>

내내 파킨슨을 의심하던 아빠는 긴 기다림, 초진, 2차례의 검사에 걸쳐 10월 23일 월요일, 드디어 결과를 들으러 갔다.

아이 스케줄로 병원을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내내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병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집에 도착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병원에선 뭐래?”

“손에 위축증이래.”

“손에? 위축증? 그리고 또 다른 건? 다리는?”

“손에 위축증!”

“그러니까! 그거랑 다리가 무슨 상관이래?”

“소! 뇌! 위축증!”


발음도, 청음도 익숙하지 않은, 소뇌위축증. 그것이 복남 씨의 질병명이었다.  


하루 세 번 먹을 약을 줬다고, 3개월 먹고 또 오라고, 운동하라고 했다고, 의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빠의 입꼬리와 광대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파킨슨을 의심하던 그와 아니라며 반박하던 딸과의 대화 끝이 다른 곳에 가닿았지만, 파킨슨보다는 낫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뇌질환을 말하면서도 가벼워 보였다. 가늠 못할 마음 구멍보다 이름이 명확한 병이라, 초면이라도 다행이라고 나도 생각했다. 복남 씨의 표정을 읽지 못한 채로, 마음은 모른 채로 다행을 논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뇌위축증과 친해지기 위해 가까운 초록이웃에게 질문했다.


“소뇌위축증은 운동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소뇌가 위축되어 운동, 보행, 언어 등 여러 활동을 수행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되고 정도가 심해질수록 증세 또한 심해집니다.
우리 신체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몸이 한쪽으로 기울여지거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행위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발음을 자주 버벅거리는 경향이 심해지고 세상이 어지럽게 보이며 물체가 여러 개로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이 떨어져 우울증 증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블로그에서 발췌)



우유 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지난 날이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끝은 있는지, 어느 날은 조금 환해진 것 같아 희망차다가 곧바로 제로 혹은 마이너스가 된 복남 씨의 컨디션에 무덤덤해지질 않았다. 바람이 한순간에 불어 안개를 모두 걷어갔다. 방금까지 안개 속이었는데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안개는 눈을 가린 것뿐이지 실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복남 씨는 사건이나 생각에 가라앉은 것이 아니고 그저 아픈 것이다. 다리 기능이 왜 떨어졌는지, 식탁의 코너를 돌 땐 왜 휘청거리는지, 손은 왜 떨리는지, 우울이 먼저였는지 소뇌가 먼저였는지,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좋았을지, 언제부터 진행된 건지, 후천적인 건지, 초기인 건지, 경과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건지, 희망은 있는 건지…. 질문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지금처럼, 아니 지금처럼에 약을 더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국면, 새로운 병명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더 이상 우울로 복남 씨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록도 새로운 이름을 달아야 마땅하다.


우리의 운동과 복남 씨의 근육은 어떻게 자리잡을지, 병명을 안 복남 씨의 기분과 의지는 어떠한지, 그대로 운동일지가 될지, 아니면 투병일지가 될지 간병일지가 될지 승리일지가 될지 하루기록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 이름으로든
계속 기록해 나갈 것이다.  


불효녀와 엄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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