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졔리 Aug 14. 2023

마도로스 리의 새 이름

복남 씨와 마도로스 리는 동해 언저리에서 며칠째 여행 중이다.


마도로스 리는 직업 특성상, 일이 들어왔을 땐 잠, 밥, 일 세 가지만 하며 지낸다. 대신 일이 끝나면 계획도, 목적지도, 기약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이번 여행은 복남 씨 콧바람을 빌미로 떠났지만, 진짜 목적은 캠핑카다.


지난 주에 마도로스 리의 캠핑카가 도착했다. 캠핑카를 사서 엄마랑 여행 다닐 거라고 호기롭게 말할 때 트레일러같이 큰, 혹은 캠핑장에 정박돼 있는 카라반 정도의 크기라 생각했다. 다행히 현실적인 스타렉스를 드림카로 잡았다. 차보다 내부 주문제작이 배 이상 비싼,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마도로스 리의 캠핑카가 지난 주 목요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동해 언저리를 활보 중이다.


마도로스 리의 취미생활을 읊자면 왜 한숨부터 나올까.

마도로스 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부글거리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빠는 경기 남부권으로 출퇴근했다. 5시 전에 퇴근해 부지런히 달려오면 6~7시에 도착해 복남 씨를 모셔갔다. 도착해서 씻고 저녁 준비를 하는 아빠가 안쓰러워 저녁 반찬을 해서 드리거나 드시고 가라고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늦는다며 8시에도 겨우 오셨다.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우리 밥상에 엄마 밥숟가락만 더 얹으면 됐다.

본가에서 보트조종 면허책을 발견했다. 설마, 저걸 정말 따려는 걸까, 막내 작은 아빠가 요트 운전하는 게 그렇게 부러웠나 하고 뱁새눈으로 지켜봤다. 어느 날, 복남 씨를 데리고 수원에 갔다. 필기를 이미 땄고, 실기를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왔던 거고, 보트를 봐놨고… 구매 승인 요청을 해달라고 정중히 모셔간 것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라 아이들 저녁밥 먹이고 빨리 애들을 씻기고 재우고 빨리 일을 해야 하는데, 조급하고 힘든 딸래미는 보이지도 않는 건지, 어떻게 자기 좋자고 저렇게 엄마를 내게 미뤄 두고 몰래(내 기준에) 따고 온 건지! 부글부글 끓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빠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걸, 복남 씨의 상태에 따라 돌보는 게 버거운 걸,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느라 애쓴 걸.

20대에 가정이 생기고 30대에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사업도 하며 안정되다가 40대에 부도를 맞고 다시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어나서 자신 없이 달린 50대, 그리고 복남 씨 간병과 여전히 일을 병행하며 보낸 60대를 지나 70대가 되신 걸. 나와 오빠가 딛고 있는 현재가 마도로스 리와 복남 씨의 애씀인 것을 안다.

아빠도 숨 쉴 틈이 있어야지, 자기 삶을 살아야지, 은퇴하실 연세지… 부글거리는 가슴을 머리로 누르고 눌러 말을 아꼈다.


그 해 추석에 아들딸 가족 모두 출동시켜서 한강에서 보트 시승식을 가졌다. 채 웃지 못하는 딸의 얼굴은 안 보이는지, 바람을 맞으며 아빠는 잇몸을 한껏 자랑했다. 그때부터 그렇게 불렀다. 마도로스 리.     

그후 마도로스 리는 배낚시, 주식을 거쳐 현재 캠핑카에 탑승해 있다. 주식으로 노후를 다 까먹을까 봐 불안했는데, 캠핑카를 보니 노후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쓴 가슴을 쓸었다.


캠핑카에서 4일 주무시고 숙소를 잡으신 것보니, 오늘은 올라오시려나 보다.

돌아오시면 맞이할 새 별명을 지어야겠다.


나의 한과 애정으로 범벅된 마도로스 리를 대신할, 마지막이길 바라는 별명으로.

작가의 이전글 (불)효녀의 시작-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